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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독백

현대 문학 속 퀴어 당사자성에 대한 짧은 소견

by 연정 2023. 6. 15.

— 정세랑 김초엽이 만들어 낸 sf 페미니즘 문학 속에 결여된 당사자성


ㅤ사실 이 글은 쓰지 않고 못 배길 것 같아서 쓰는 거다. 그러니까 입에 가시가 돋칠 것 같아서 쓰는 거다. 솔직히 누가 관심이 있을까 싶지만 그냥 자기만족으로 쓰는 글이니 편협해도 이해해 주길 바란다.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으로 보는 요즘 문학에 대한 글이다. 일단 난 현재, 그러니까 202X년 대의 현대문학을 그렇게 긍정적으로 읽고 있지 않다. 책을 적게 읽진 않았지만 많이 읽은 편도 아니라 어느 정도 납작한 관점이 녹아 있을 순 있다. 아무튼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정세랑, 김초엽 등의 작가들이 당사자성 없이 여성애를 그려내는 것에 이상한 유감을 갖고 있다.

ㅤ김초엽을 처음 읽은 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통해서였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를 잘 읽었기에 끝까지 쭉쭉 읽어 나갔다. 타이틀이 된 우빛속도 잘 읽었고, 스펙트럼이나 관내분실 같은 단편도 그 나름의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당시의 나는 “이런 문학이 나올 수 있어 정말로 진심으로 매우 많이 기뻤”다. 이런 문학의 탄생 자체가 여성 인권의 진일보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냐고, 그렇게 의미 부여를 하며 책을 닫았던 것 같다. 알다시피 책의 마지막 단편도 그렇게 읽을 여지가 충분한 작품이었으니까. 분명 그랬다. 난 아직도 그때 받은 감동을 기억한다. 근데 왜 이렇게 변했을까? 그렇게 아름답고 감동적으로만 느껴지던 글들이 이제는 읽을 때 숨을 조인다. 기분이…… 너무 이상하다. 나는 이 다정함을 좋아했고 위로도 받았고 그래서 이 책이 좋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백 프로 이해할 수 있었는데 2023년의 지금은 그 마음과 너무 많이 멀어졌다.

ㅤ정세랑을 처음 읽은 건 <지구에서 한아뿐>을 통해서였다. 이것 역시 차세대 문학이 지향해야 할 모범적이고 교과서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정세랑이 그려내는 다정한 세계가 참 좋다고, 이해 받는 느낌이라고, 그래서 이런 문학이 나올 수 있게 된 세계의 성장을 사랑한다고. 그렇게 느꼈다. 그런데 왜 그때와 다르게 지금은 읽으면 서운할까.

ㅤ내가 느끼는 지점은 결국 당사자성의 결여다. 당사자성이 없기 때문에 비당사자들을 향해 건네는 그 손이 미워졌다. 아, 물론 나도 안다. 이게 진일보는 맞다는 걸. 미워하고 혐오하는 대상에서 챙김 받는 대상이 된다는 건 엄청난 발전이 맞다. 근데, 근데, 그래도……. 나는 이들이 그려내는 여성애가 어느 시점부터는 불편해졌다. 분명히 자연스러운 여성애를 원한다고 말했는데, 정말 얄궂게도 나의 바람이 실현이라도 된 것처럼 모두가 자연스러운 여성애를 추구하는 문학을 시대의 응답으로 써내려가는 모습에 마음이 자꾸 비틀린다. 그러니까 머리로는 이게 긍정적인 현상인 걸 아는데 마음이 그렇지 못하다는 거다. 어떤 점이냐고 물으면…… 당사자성이 없어서 연대를 로맨스로 치환해 비출 수 있는 비당사자들의 얄팍한 호의가. 정말 밉다. 꼬인 마음인 거? 알고 있다. 그러니 소비는 꾸준히 하면서 괴롭다고 이런 글을 쓰고 있지. 하지만 역시 말해야겠다. 연대를 여성애로 치환해 제공하는 다정한 시선이 너무, 너무, 너무 여성애를 현실에서 경험하지 않을 법한 시스젠더 헤테로의 자신감이 섞인 납작한 접근 같다고. 그래서 자꾸 읽을 때 숨이 막힌다고.

ㅤ나는 에이엄으로 정체화해 살고 있다.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여성 집단 안에 묶이는 게 불편한 사람이다. 정확한 단어를 쓰자면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근데 근래에 트랜스젠더라는 말이 밈화가 많이 돼서 그 말을 잘 안 쓰려고 하고 있다. (단어를 사용할 때 부과되는 모든 조롱적 시선이 부담스럽고, 나는 비겁한 사람이라 그 시선의 회색 지대에 머물고 싶다고 말하겠다.) 그냥 성별 정체성이 남들보다는 많이 적다고 해 두자. 내가 내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여성인권 운동과는 멀어졌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게, 페미니즘이 싫다는 게 아니다. 다만 뭇 페미니스트들이 자꾸 기득권적인 발언을 할 때마다 미운 마음이 축적됐다. 제 1세계 시스젠더 헤테로 여성만을 위한 엘리트 페미니즘에 환멸을 느껴 여성 운동에 감동을 못 받은 지 오래다. 여성 임파워링을 감동적으로 느꼈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슬슬 그게 기만적으로 보이는 현재를 살고 있다. 그러니까, 여성 운동에 심취해 있던 자아가 슬슬 벗겨지고 이제 좀 냉소적으로 페미니즘 운동을 보게 돼 위 문학의 스텐스에 아쉬움을 진하게 느끼는 중이라는 말이다.

ㅤ페미니즘 운동은 여성들이 자신의 과거를 긍정하고 자신과 화해하며 자기 스스로를 다독여 줄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연민이 필수불가결적으로 필요하다. 스스로의 불쌍했던 시절을 바라보고 울 수 있는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연민이 반영된 문학이 여성들에게 많은 위로를 전했다. 하지만 난 그 위로의 시선이 견고해지면 견고해질수록 숨막혔다. 내게 필요했던 건 비당사자들이 로망을 갖고 내미는 연대의 손길이 아니었던 거다, 분명히. 왜냐면 그건 그저 앨라이의 따뜻한 문학일 뿐이니까. 그리고 그 친절한 앨라이들의 시선에 말라 죽을 것 같으니까. 그 모든 따뜻한 시도들이 말이다, 분명 좋은 의도인 것을 알고 있음에도 기만적으로 느껴진다.

ㅤ연대를 여성애로 표현한다는 거, 좋은 시도였는데 이젠 너나 나나 여성애로 여성 연대를 은유하고 아름답게 그려낸다. 그래서 싫다. 연대는 그런 낭만적인 게 아니니까. 내가 목도한 현실은 드럽고 추잡했고 낭만적이지도 않았다. 경험해 본 적 없으니까 그려낼 수 있는 로망이라고 생각한다. 치열하게 당사자로서 투쟁을 해 봤다면…… 글쎄, 잘 모르겠다. 내가 에이엄이라서 연대라는 개념을 꼭 '연애'로만 표현할 수밖에 없는 좁은 시선이 불편한 걸 수도 있다. 꼭 모든 사랑이 다 연애로 설명되는 게 아닌데. 자연스럽게 여성애, 정확히는 여성 연애를 행하는 문학들이 생각보다 좀 많이 비참했다. 이 따뜻한 시선에 내가 낄 자리가 없다고 느꼈다. 웃긴 마음이다. 이것보다 더 배제 받았으면서 이런 마음이 든다는 게. 근데 여전히 연애가 디폴트인 건 다름 없어 더 힘이 빠지는 것 같다. 혹은 작가들이 헤테로 로맨스에서 상대 성별을 바꾸어 여성애로 그려내는 것에 성공했으나 경험을 통한 글쓰기보다는 공상을 통한 글쓰기라서 생기는 그 가벼운 낭만이, 이제 나는 무턱대고 미운 것 같다. 여성애란 더 없이 정치적인 소재지만 낭만적으로 다뤄지는 순간 현실의 고뇌는 지워져 정치적인 한 가운데 가장 비정치적인 무언가가 된다. 그 점이 싫은 걸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그려낸 딱 그 좁은 윤리적 테두리 안에서만 따뜻할 수 있는 안온함이, 그 좁은 테두리 안에 있을 수 있는 나이브함이 질투가 나서.

ㅤ친절한 당신들은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가 분명히 존재하고, 나는 그 따뜻하게 닫혀 있는 세계가 싫증이 난다고 말한다. 직접 겪을 일 없는 퀴어의 삶을 대중의 요구에 의한 응답으로 그려낸다는 게, 다정한 결의라는 건 알지만 시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성애를 경험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여성애를 연대의 표상으로 쓰는 게 싫다. 물론 그들이 그런 삶을 경험해 본 일 없다고 단정하는 건 심각한 오판일 수도 있다. 그리고 경험을 초월하는 글쓰기가 가능하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여전히 작가가 경험하지 못한 소수자성에서 그 모든 살아내고자 하는 치열함이 사라져 낭만적으로만 유통되는 게 싫다. 그 안에서 여성애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인공적인 지지가 있어 가능한 것이고, 분명 그 지지는 의미가 있지만 당사자성 없는 지지이므로 소수자들은 여전히 타자화되어 있다. 더불어 그 모든 사랑이 고작 연애로 치환되는 좁디 좁은 윤리도. 이제 너무 물린다. 고작 오 년 됐는데 질린다. 하지만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양가감정이 든다. 그래서 계속 소비하고 읽으려고 하지만 무슨 소용인가 싶다. 그 세계는 너무 따뜻하지만 시스젠더 헤테로 제드 여성 안성 맞춤의 세계고. 상상해 본 적 없는 다른 소수자들을 위한 세계는 될 수 없다. 일단 나는 떠밀려 나간 것 같다.

ㅤ생각보다 친절하지 않은 현실에 환멸이 나서 투쟁을 할 수밖에 없게 내모는 조건에 대한 고찰은 전혀 없이 낭만만을 설파하는 비당사자적 글이라는 게, 힘겨운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그 글들을 소비할 것이다. 왜냐면 내 마음에 안 든다고 그 글들의 의미가 다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다만 그 글들이 세상이 전할 수 있는 모든 위로를 함축했다고 믿을 수 있는 안이함이 밉다. 이 글들을 대놓고 비판해도 작가한테 영향이 별로 없을 세상이 얼른 와서 자유롭게 비판하고 싶다. 어떤 부분이 숨막혔는지 조목조목 따져서 낱낱이 해체하고 싶다. 그냥 그때가 얼른 오길 바랄 뿐이다. 작금의 sf 페미니즘 문학 안에 녹아 있는 자기 연민으로부터 비롯된 온정적인 연대의 손길이 기만적이고 시혜적이라 작가들의 세계가 넓어졌으면 좋겠다고 떠들고 다녀도 별 영향 없을 그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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