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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독백

'한남 유충'이라는 단어 사용에 대한 반대 논리

by 연정 2023. 6. 1.


유충이라는 말을 쓰는 게 좋은 미러링 화법이라고 생각 않는다. 특히 여아들에게 '유충'이라는 말을 가르치는 게 좋은지 모르겠다. 결론만 말하자면 사회가 남아와 여아를 구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유충이라고 남아를 깎아내릴 때 다분히 반격 당할 여지가 크다. 한녀 유충 같은 말로. 그럼 어쩔 텐가.

'이십대 남성'들은 현재의 사회가 '여성우월주의' 사회라고 믿으며 엄청난 피해 의식을 갖고 있다.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했을 특권들을 여자들이 빼앗아 갔다고 믿으며 여성을 혐오할 사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니까 그런 '역차별도 차별이다' 같은 얘기를 할 수 있는 거다. 이 새끼들은 교묘해서 논박을 해도 들어 처먹지를 않는다. 그냥 지들 생각하기에 지들한테 불리한 건 그걸 왜 남자 탓하냐고 하고 지들이 조금이라도 더 유리할 지점은 선취해서 어깃장을 부리고. 남을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이 있었다면 이딴 짓은 안 한다.

그런데 왜 한남 유충이라는 말에 반대를 할까. 그냥 한남 혐오하면 안 되나?
어차피 교화 불가능한 새끼들 아닌가.

일단 아이들이 그 이십대 남성이 아니니까라고 말하고 싶다. 혹자는 아이들이나 그들이나 남자는 다 똑같다라고 하는데, 나는 달리 생각한다. 단순한 낙관이 아니라, 사회가 그런 식으로 혐오 감성을 대물림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에 빚어진 '이십남'들은 사회가 방치해 만들어진 폐급 쓰레기들이니까. 이전 세대의 부모들은 이 '이십남'들을 어화둥둥 모셔 키웠다. 남자애니까 기 상하면 안 된다는 이유로 여자애들을 자존감을 갈취하며 남자애를 길러왔다. '남자애는 원래 그런' 존재니까.

지금 사회는 어떨까? 젠더 갈등이 격화됐지만 남성들을 방치 중인 건 여전하다. 왜냐면 '말이 안 통하는' 상대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의 논리가 여성 집단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이들은 혐오의 타겟으로 교정당할 기회를 박차고 지들 스스로 쓰레기통에 들어가 구른 것이나 다름 없는데, 사회에서 이 새끼들을 방치한 끝에 전에 없는 폐급들이 되었다.

그러니까 자라나는 애들은 이 전처를 밟으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다. 이 새끼들처럼 자라서 여성 혐오가 대물림 되어 남성 카르텔이 공고해지면 핍박 받는 여성이 늘어날 거니까. 그러려면 존나 집요하더라도 걔들한테 말해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가해자가 되지 않는지. 이 기본적인 걸 학습시켜야 한다. 자라날 여성 청소년들과 사회를 공유하게 될 아이들한테.

그게 꼭 여성 청소년들에게서 무기를 갈취하자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유충이라는 단어가 좋은 선택인가?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왜냐면 '한남 유충'에서 '한남'을 떼어버린 '유충'이라는 단어의 혐오 대상에 여아들까지 포함되니까. 그건 결국 자해를 통한 가학이나 다름없다. 아이들이 스스로의 어린 점을 부끄러워 하라고 가르치는 거나 다름없다. 아이들이 나아질 수 있는 사회가 올바른 사회인 걸 차치하고, 결국 그 유충이라는 말을 쓰는 순간 이상한 강박이 생기는 것이다. "어린 애처럼 굴면 안 되겠구나," 라는 강박.

일례로 "한남들은 다 뚱뚱하다. 돼지 한남들 역겹다."라는 말에 들어 있는 펫 셰이밍 혐오를 보고, 비만의 여성이 유감을 표하는 일을 들겠다. 일종의 운동의 성격을 갖고 "한남한테만 그러는 거"라고 위로를 전해도 이 여성에게 위로가 될까? 아니. 그냥 자신도 그렇게 보이겠구나 하는 거다. 그래서 남성 혐오인 동시에 비만인 혐오가 되는 저 문장은 결국 비만인 여성까지 공격하는 꼴이 된다. 혐오는 아래로 흐르게 되어 있고, 의도하든 안 하든 혐오의 대상은 지극히 사회적이라 발언자가 그 대상을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충이라는 단어도 그렇다. 이 표현법에 반대하는 이유는 단지 "그게 아동 혐오"이기 때문이다. 다른 건 몰라도 애 스스로 유충이라는 단어로 자학식 가학을 하게 만들고 싶진 않아서다. 정론은 아이한테 논파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거겠지만, 그게 힘들다면 차라리 패드립을 가르쳐라. 유충이라는 단어로 스스로의 "어린이성"까지 부정하게 만들면서 욕을 해야 할까. 솔직히 남의 양육자 얼굴에 침 뱉는 일도 자기 양육자 얼굴에 침 뱉는 일이겠지만 유충이라는 단어는 애들한테 "네 얼굴에 침을 뱉음으로써 널 보호하라"는 말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욕이 얼마나 다양한데 굳이 싶다. 물론 대부분이 여성 혐오적인 욕설이겠지만, 유효성만 따지면 "니비 실좆으로 씨 팔고 다닐 후레 새끼야. 느그 애비가 그따위라 니 같은 후레 썅놈을 낳았지. 니 애비 최대의 실수가 정관 수술 안 하고 니 낳은 거임."도 충분하지 않은가?

솔직히 욕 가르치는 것보다 손 내밀어 줄 어른들이 절실하다는 게 내 생각이라 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게 좀 탁상공론 같기는 하다. 그보다는 여아들 곳곳에 필요한 어른들이 많이 생겨서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의지할 존재를 심어 주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보니까. 사회에 여아들 편들어 줄 존재가 많아져야 한다. 하지만 '한남 유충'이라는 단어의 붐은 사실 여아들이 쓰냐 안 쓰냐에 달려 있는 것 같지만은 않다. 그때 그 여성 청소년이었던 아이들이 자라서 성인이 되었고,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에 여아들 편을 들기 위해 남아들을 효과적으로 타격 입힐 수 있는 단어를 고르다 이 단어가 만들어진 것 같으니까. 나름의 노력의 산물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다. 일종의 방어복을 입힌다는 심리로 "앞으로 남자애가 괴롭히면 이걸로 공격해"라고 말하는 것이겠다만, 글쎄. 그 공격이 얼마나 갈까. "그럼 넌 한녀 유충이네."로 논박 당하기까지 얼마나 갈까. 지금도 '한남'이라는 단어를 '한녀'라고 비틀어 조소하는 게 그들인데.

우리가 헷갈리지 말아야 할 게 그때 나를 괴롭혔던 쳐죽일 한남 새끼가 눈앞에 있는 남자애가 아니라는 점이다. ptsd가 당연히 올 수 있다. 하지만, 걔가 쟤가 아니라서 쟤한테 화풀이 해 봤자 내 상처가 없어지진 않을 거다. 왜냐면 걔가 아니니까. 그러니까 걔랑 쟤랑 다르게 대우해야 한다. 나아질 걸 믿어야 나아지고 나아지지 않으면 우리 세대보다 더 좆같은 남성들을 겪을 테니 말이다.

나는 아이를 가질 마음이 없고 결혼도 할 마음이 없다. 하지만 어른으로서 좀 더 나은 세상을 자라는 여성 청소년한테 물려 주고 싶다. 나의 세대가 겪어야 했던 한남들을 자라는 여아들은 최소한 덜 겪었음 좋겠다. 그래서 피곤해도 혐오로 응대하는 건 안 된다는 거다. 혐오로 방관하면 지금 세대 남성들보다 더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친 한심한 폐급 쓰레기들이 양성될 테니까.

이전 세대보다 남성으로서 누리는 게 없어서 여성들을 혐오하고 동시에 여성들의 아동 혐오 워딩으로 마음이 상해서 여성 집단에 대한 반발심이 더 심해진 업그레이드 된 이십대 남성을 만나고 싶지 않다. 정말로. 좋은 일은 생기지 않지만 좆같은 일은 잘 생기기 마련이고 이 플로우가 이런 남자애들을 낳을 걸 생각하면 그냥 넌더리 난다. 애들한테 상식적으로 굴고 뒤에서 여자애들 편 존나게 들어주고 남자애들한테 여성 혐오에 대한 개념을 끊임없이 가르치고 대화해라. 귀찮겠지만 여아들을 위한다면 그게 제일 효과적이고 궁극적인 해결책이다. 현재의 상황을 종식시킬 만한 방법 말이다. 교착 상태에서 우위를 점하는 방법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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