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36 활동가의 열광은 자신의 일을 무효로 돌려놓는다. (…) 그것은 자신이 하는 일의 결실을 파괴한다. ㅤ‘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ㅤ얼마 전에 넥슨의 집게 손가락 일루미나티 설로 남초 커뮤니티 등지에서 발칵 뒤집혔던 사건이 있고, 그 일에 대한 후폭풍으로 sns 등지에서는 촌초로 부당해고에 대한 반대 발화와 페미니즘 사상 탄압 금지 발화가 이어졌다. 그 중심에는 두 활동가 분이 계셨다. 그분들의 활동에 감사를 표하고 지지와 연대를 보낸다. 하지만 활동가 분의 아동 성착취물에 대한 나이브한 스텐스에 마음 한 켠이 비통해지는 건 어째서였을까. ㅤ솔직히 나는 일련의 플로우에 대해 전혀 관련 없는 제삼자였다. 그저 두 활동가들이 대신 나서서 싸워 주심에 감사함을 느끼던 찰나, 일각에서 제기하는 문제들이 눈에 들어온 게 이 지리한 비통함의 시작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해당 활동가 .. 2023. 12. 3. 출생기 ㅤ신은 스스로 태어나기를 결정했다. ㅤ그가 만들어낸 인간은 신의 귀속을 받아 태어남을 당하고 죽음을 당한다. 신은 이를 통해 인간과 신의 완벽한 위계를 만들어냈다. 인간이 신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단 한 가지에 있다. 출생과 사망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부조리. ㅤ그 언젠가 신이 죽음을 결정한다면 인간은 신의 결정에 그저 수긍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는 즐겁게 죽으러 갈 것이고. 인간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삶과 죽음을 반복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ㅤ그렇게 신으로부터 잊혀져 신의 부름을 받기를 영원히 기다릴 것이다. ㅤ이것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영원이라는 개념이다. 부조리와 무능. 2023. 12. 2. 자유 ㅤ이제는 조금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ㅤ내가 여전히 타인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괴로워한다는 사실이 괴롭다는 게 아니라, 여전히 그 기억에 붙들려 자유로워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괴롭다. 얽매임. 그 자체가 괴롭다. ㅤ어쩌면 상처 받기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일 테다. 하지만 한켠으로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고 있다. 세상은 비가역적으로 흘러간다. 가역적으로 돌이킬 수 있는 것들은 없다.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몰라도. 반대 방향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 모습이 선형이든 원형이든 어떻든 간에. ㅤ그러니까, 내가 가정하는 멋진 인간상은 나를 상처 준 사람의 소식을 들어도 무탈할 만큼 강인한 마음을 갖는 것일진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괜찮지 않을 것이다... 2023. 12. 2. 현대 문학 속 퀴어 당사자성에 대한 짧은 소견 — 정세랑 김초엽이 만들어 낸 sf 페미니즘 문학 속에 결여된 당사자성 ㅤ사실 이 글은 쓰지 않고 못 배길 것 같아서 쓰는 거다. 그러니까 입에 가시가 돋칠 것 같아서 쓰는 거다. 솔직히 누가 관심이 있을까 싶지만 그냥 자기만족으로 쓰는 글이니 편협해도 이해해 주길 바란다.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으로 보는 요즘 문학에 대한 글이다. 일단 난 현재, 그러니까 202X년 대의 현대문학을 그렇게 긍정적으로 읽고 있지 않다. 책을 적게 읽진 않았지만 많이 읽은 편도 아니라 어느 정도 납작한 관점이 녹아 있을 순 있다. 아무튼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정세랑, 김초엽 등의 작가들이 당사자성 없이 여성애를 그려내는 것에 이상한 유감을 갖고 있다. ㅤ김초엽을 처음 읽은 건 을 통해서였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2023. 6. 15. '한남 유충'이라는 단어 사용에 대한 반대 논리 유충이라는 말을 쓰는 게 좋은 미러링 화법이라고 생각 않는다. 특히 여아들에게 '유충'이라는 말을 가르치는 게 좋은지 모르겠다. 결론만 말하자면 사회가 남아와 여아를 구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유충이라고 남아를 깎아내릴 때 다분히 반격 당할 여지가 크다. 한녀 유충 같은 말로. 그럼 어쩔 텐가. '이십대 남성'들은 현재의 사회가 '여성우월주의' 사회라고 믿으며 엄청난 피해 의식을 갖고 있다.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했을 특권들을 여자들이 빼앗아 갔다고 믿으며 여성을 혐오할 사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니까 그런 '역차별도 차별이다' 같은 얘기를 할 수 있는 거다. 이 새끼들은 교묘해서 논박을 해도 들어 처먹지를 않는다. 그냥 지들 생각하기에 지들한테 불리한 건 그걸 왜 남자 탓하냐고 하고 지.. 2023. 6. 1. 확신 당신은 어땠을까. 나를 기다렸을까. 기다리지 않았다 한들 내가 당신을 생각하는 동안 당신이 나를 생각했을 거란 확신이 있다. 그러면 다시 슬퍼진다. 당신은 그러지 않아야 하고, 나는 당신이 그러지 않기를 바라야 한다. 무엇 하나 지켜지지 않은 상황을 반길 수는 없다. 그래서 내 생각을 할 법한 당신이 슬퍼 보인다고 말한다. 그게 나의 최선이었다. 2022. 8. 2. 이전 1 2 3 4 ···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