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13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ㅤ그녀가 프란츠에게 묘지에서 산책한 일을 이야기했을 때, 그는 몸서리를 치며 묘지를 뼈와 돌조각의 하치장에 비교했더랬다. 그날 그들 사이에 몰이해의 심연이 깊게 팼다. 오늘에 와서야 몽파르나스 묘지에서 그녀는 그의 말뜻을 깨달았다. 그녀는 자기에게 참을성이 없었던 것을 후회했다. 함께 더 오래 있었더라면 그들은 조금씩 그들이 사용했던 단어들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어휘는 너무도 수줍은 연인들처럼 천천히 수줍게 가까워지고, 두 사람 각각의 음악도 상대편의 음악 속에 녹아들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이제는 너무 늦었다. ㅤ그렇다, 이제 너무 늦었고, 사비나는 자신이 파리에 머무르지 않고 더 먼 곳, 더 멀리 떠나리라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죽으면 그녀는 바위 아래에 갇힐.. 2021. 9. 14.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ㅤ테레자와 토마시가 누워 있는 묘지는 어떻게 생겼을까? ㅤ그녀는 다시 한번 그들을 생각했다. 그들은 가끔 이웃 마을에 가서 호텔에 묵었다. 편지의 이 대목이 그녀에겐 충격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행복했다는 것을 증명했다. 마치 그녀 그림의 한 점처럼 토마시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마치 전경에 서툰 화가가 그린 가짜 무대장치처럼 돈 후안의 모습이 있다. 무대 장치 틈 사이로 트리스탄이 보였다. 그는 돈 후안이 아니라 트리스탄으로 죽은 것이다. 사비나의 부모는 같은 주에 세상을 떠났다. 토마시와 테레자는 같은 순간에 죽었다. 갑자기 그녀는 프란츠와 함께 있고 싶어졌다. p.204-205 2021. 9. 14.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ㅤ제네바에서 사 년을 지낸 후 사비나는 파리에서 살았으며 여전히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누군가 그녀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해도 그녀는 딱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할 것이다. ㅤ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이 짐을 지고 견디거나, 또는 견디지 못하고 이것과 더불어 싸우다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비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녀는 한 남자로부터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떠났다. 그 후 그 남자가 그녀를 따라왔던가? 그가 복수를 꾀했던가? 아니다.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2021. 9. 14.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ㅤ어느 날 그는 부인을 찾아가 다른 여자와 재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ㅤ마리클로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ㅤ"이혼한다 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거야. 당신은 아무것도 잃을 거 없어. 당신에게 다 주겠어!" ㅤ"내게 돈은 중요하지 않아." ㅤ"그러면 뭐가 중요하지?" ㅤ"사랑." ㅤ"사랑이라고?" 하며 프란츠가 놀랐다. ㅤ마리클로드는 미소를 지었다. "사랑은 전투야. 나는 오랫동안 안 싸울 거야. 끝까지." ㅤ"사랑이 전투라고? 나에겐 싸울 마음이라곤 털끝만치도 없어."라며 프란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p.200 2021. 9. 14.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ㅤ물론 그녀의 결심은 부당함의 극치이며 프란츠는 그녀가 사귀었던 모든 남자 중에 가장 훌륭했고, 지적이며, 그녀의 그림을 이해했고, 선하고, 정직하고, 미남임을 그녀도 알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그녀는 그 지성, 그 선의를 훼손하고, 그 멍청한 위력에 폭력을 가하고 싶었다. ㅤ그날 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흥분한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격렬하게 그를 사랑했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고 동시에 이미 그곳에서 먼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또다시 멀리에서 배반의 황금 나팔 소리가 들렸고, 그녀는 이 부름에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녀 앞에 아직도 광활한 자유의 공간이 열려 있으며 그 공간의 넓이가 그녀를 흥분시키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도 프란츠를 미친 듯 거칠게 사랑했다. ㅤ프란츠는.. 2021. 9. 14.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ㅤ사비나가 램프를 끈 것은 바로 그의 감은 눈 때문이다. 그녀는 단 일 초라도 감은 눈을 보고 싶지 않았다. 속담에도 있듯이 눈은 마음의 창이다. 그녀가 보기에 눈을 감은 채 그녀 위에서 버둥거리는 프란츠의 육체란 영혼이 빠진 육체였다. 그는 채 눈을 뜨지 못한 작은 짐승 같았고 목이 말라 애처로운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근육이 멋진 프란츠는 그녀의 젖을 빠는 커다란 강아지 같은 체위를 취했다. 그리고 그것은 맞는 말이다. 그는 마치 젖을 먹는 것처럼 그녀의 젖꼭지 중 하나를 물고 있었던 것이다! 프란츠의 하반신은 남자이지만 상반신은 젖을 먹는 신생아 같았다. 신생아와 동침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거의 혐오스러움을 느꼈다. 그렇다, 그녀는 그녀의 몸 위에서 절망적으로 몸부림치는 그의 모습을 더 이상.. 2021. 9. 14.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