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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by 연정 2021. 10. 8.

ㅤ그러나 작가란 자기 자신 이외의 것은 말할 수 없다고들 하지 않는가?
ㅤ마당에서 무기력하게 바라보며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것. 사랑이 고조된 순간 자기 배 속에서 끈질기게 꾸르륵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 배신하고 또한 이토록 아름다운 배신의 길 중간에서 멈출 수 없는 것. 대장정 행렬 속에서 주먹을 치켜드는 것. 경찰이 숨겨둔 도청 마이크 앞에서 유머 감각을 과시하는 것 등. 나도 직접 이런 상황을 겪어보았다. 그러나 내 이력서 속 자아로부터 그 어떤 인물도 도출되지 않았다. 내 소설의 인물들은 실현되지 않은 나 자신의 가능성들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그들 모두를 사랑하며 동시에 그 모두가 한결같이 나를 두렵게 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가 우회하기만 했던 경계선을 뛰어넘었다. 나는 바로 이 경계선(그 경계선을 넘어가면 나의 자아가 끝난다.)에 매혹을 느낀다. 그리고 오로지 경계선 저편에서만 소설이 의문을 제기하는 신비가 시작된다. 소설은 작가의 고백이 아니라 함정으로 변한 이 세계에서 인간 삶을 찾아 탐사하는 것이다. 자, 이제 그만하자. 토마시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p.355-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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