ㅤ테레자는 소련 침공 초기 시절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모든 도시의 거리 표지판을 떼었고 도로 안내 표시도 뽑아 버렸다 하룻밤 사이에 온 나라가 익명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일주일 동안 소련군은 그들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우왕좌왕 헤매고 다녔다. 장교들은 신문사, 텔레비전 방송국, 라디오 방송국을 점령하려고 했으나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어깨만 으쓱하거나, 거짓 주소를 주거나, 잘못된 방향을 가르쳐 주었다.
ㅤ세월이 흐른 뒤 생각해보니 이 익명성이 나라에 아무런 위험도 주지 않은 채 그냥 스쳐 지나간 것 같지는 않았다. 거리나 집이 어느 하나 원래 이름을 되찾지 못한 것이다. 보헤미아의 온천 도시가 하루아침에 상상 속의 작은 소련으로 변했고, 테레자는 그들이 이곳으로 찾으러 왔던 추억이 압수당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들은 도저히 거기에서 하룻밤을 지낼 수 없었다.
p.272-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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