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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독백

굴절 혐오

by 연정 2021. 7. 21.

ㅤ어떤 계층을 과하게 트집 잡아서 미워하고 있는 경우 굴절 혐오 중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진짜 억압을 하는 주체를 알지만 뱉으면 무력감과 패배감에 비슷한 계층끼리 부딪치며 서로 탓하는 것이다. 일전에는 나도 이런 일에 열을 올렸었다. 시시각각 하잘 쓸 곳 없는 '탓'을 하며 완전무결함을 요구하고, 동시에 나 자신을 검열하며 스스로를 미치게 만들었다. 아무도 시킨 적 없는 일을 혼자 해내며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다 자부했었다. 그런 멍청이였다, 내가. 지금은 그때로부터는 조금 달라진 것을 느낀다. 아직 화내던 버릇이 남아있어 해야 할 말은 기어이 하게 되지만. 미워하는 일에 너무 힘 쓰고 싶지 않아 금방 지치는 것도 사실인지라. 게다가 누군가를 너무 미워할 때는, 내가 나의 '죄'까지 투영하여 미워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내 스스로에게 지키자 약속했으나 못 지킨 것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남들도 그럴 거라 믿으며 남에게 그것을 배로 강요하는 방식으로 회개하려 했다. 모순투성이였다. 흠 있는 몸으로 이런 입바른 소리 하는 것도 자격 없단 소리 들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한 바보 짓을 누군가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바보였구나 느끼는 것도 값진 경험이지만 가끔은 정말로 그때의 나를 지워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 어쩌면 오늘의 나도 십 년 후의 내가 보면 지워버리고 싶을 수 있지. 그러나 나는 내가 지금 믿는 것을 말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며 어른이 되기로 내게 약속했다. 과거의 내가 나 같은 사람의 얘기를 듣고 한 번쯤은 더 생각해봤다면, 하는 것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지금 어딘가에서 고민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내 기록들이 닿는다면, 그래서 그 고민이 힘겨운 고민임을 인정하게 만들고 자신이 할 선택을 진지한 태도로 고른다면. 그럼 좀 괜찮지 않을까 하는 거다. 어쨌든 누군가의 일기장을 펼쳐보는 건 대체로 즐거운 짓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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