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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독백

여성혐오의 본질은 '창녀' 혐오다.

by 연정 2021. 7. 19.

ㅤ '창녀'가 받는 날 것의 혐오가 여성혐오의 본질이다. '보지를 파는 사람들'은 강간을 당해도 괜찮은가? 고민할 것도 없이 답은 NO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바라지 않은 성적 행위 때문에 일어나는 성적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권리가 있다. 따라서 '페이 강간'이라는 말은 결국 '창녀'들을, '강간당해도 마땅한 존재'로 격하시키는 말이다. 이 세상 어디에 강간당해도 괜찮은 여성이 있는가? 이 질문에는 없다고 할 것이면서 '창녀' 얘기를 꺼내면 그들은 강간을 받아도 발언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타자화시켜버린다. 어떤 '창녀'가 강간을 당하고 싶다고 말할까? 아, 취향이 특이해 강간 판타지가 있는 여성이 있다고 치자. 그런데 그 여성을 불시에 합의 없이 강간을 했을 때 그 여성이 행복하다고 할까? 여성마다 다르겠지만 강간 판타지가 있다고 해서 여성이 당한 일이 강간이 아니게 되지 않듯이, '창녀'들이 당한 일이 강간이 되지 않는 게 아니다. 그런데 아마 그렇게 말하겠지. 자기들이 택해서 하는 일인데 왜 힘들다고 말하냐고. 그건 노동이니까 힘들다고 말하는 거다. 당신들 중 다수가 택해서 알바를 하고 직장을 다니고 공부를 하는데 힘겨움을 안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그런데 '창녀'들이 노동 현장에서 느끼는 설움은 보통의 노동과는 결이 다르다. 그들은 철저하게 보호 받을 수 없는 존재로, 사회에서 노동자로서의 모습이 아닌 최하층민의 표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당신이 '창녀'를 혐오한다면 당신은 계급 의식에 절여진 인물일 수도 있다. 최하층민에 위치한 그들의 입지를 혐오하고, 왜 스스로 그 자리에 머무르냐고 닦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기생충'의 박 사장이 기택에게 냄새 난다고 혐오했듯이. 당신들도 같은 짓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별개로 '기생충'의 의도된 포르노적 장면 삽입은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다. 사족인데 봉 감독, 혹은 기생충 팬이라고 생각할까 봐. 기생충이 여성혐오 작품인데 왜 인용을 하냐는 멍청한 소리는 부디 하지 말아달라. 내가 '개빻은' 작품을 인용하는 게 나를 '개빻은' 사람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ㅤ이렇게 적으면 누군가는 또 물을 것이다. 그래서 왜 탈성매매 안 하는데? 나는 답한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사람마다 사정 다 다르다. 그럼 나는 되묻겠다. 왜 몸을 팔면 안 되는데? 인신매매라서? 그럼 몸을 쓰면서 땀 흘리며 일하는 건설 현장의 노동자는 몸을 팔고 있는 셈인데 왜 비난 받지 않을까? 성적인 착취가 일어나서? 그래서 '창녀'들이 성착취 비판을 할 때 당신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나? '창녀'들을 비난하지는 않았고? '보지 파는 일'이 여성인권을 낮춰서? 이쯤에서 모두가 잘못 알고 있는 명제를 뒤집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지 파는 일'이 여성인권을 낮추는 게 아니다. 여성인권이 낮기 때문에 '보지 파는' 사람들의 인권이 낮은 거다. 이 글의 맨 처음에 적은 문장을 그대로 인용한다. '창녀'가 받는 날 것의 혐오가 여성혐오의 본질이다. 여성혐오가 남아있는 한 단순히 '창녀' 계층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 혐오가 사라지지 않으리라. 당신들은 그저 '창녀'라는 이름으로 부를 계층을 잃은 것일 테고 더 음침하게, 비가시적으로 여성들을 '창녀'로 대하는 사회를 볼 수 있으리라.

ㅤ'창녀'는 소수자다. 그들이 받는 취급이 낮으면 낮을수록, 여성혐오에 절여진 사회임을 당신들이 알아야 한다. 사실, 요즘의 담론들 중 일부가 '창녀' 혐오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다. "너 그렇게 입고 다니면 사람들이 널 '창녀'처럼 대할 걸"로 축약이 가능한 말들. 그럼 이렇게 되묻겠다. '창녀'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건데요? '창녀'는 사회의 밑바닥에서, 여성의 인권을 낮추어 누구에게도 환대 받지 못할 사람들로 대해야 하나요? 죽어 마땅한 사람들처럼? 당신들 중 다수가 자신이 그런 게 아니라, 사회가 그런 거라고 말하겠지만 슬프게도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당신이 그 사회의 일부다. 당신이 바라보는 세상의 관점을 투영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과 사회를 분리할 수 없음을 알고, 당신이 가진 '창녀' 혐오에 대해 부디 자각하길 바란다. 그들은 여전히 살아 숨쉬는 사람이다. 목소리를 낼 자격이 있고, 기쁠 땐 웃고 슬플 땐 울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그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사회의 기울어진 극단에 자신이 무게 싣고 있는지 살펴보라. 당신이 밟고 올라선 '창녀'들을 똑바로 바라보라. 믿기 힘들겠지만, 당신이 밟은 그 여성들이 바로 여성혐오의 본질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괴로워하던 사람들이다. 제 일 순위 연대의 대상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들이 바로 우리니까. 우리는 결국 같은 여성이고, 그들이 받는 차별과 모진 시선을 우리도 견디고 있다. 우리가 그들을 환대하지 못 하면, 우리도 환대 받지 못 하는 사회를 살아가게 될 것이다.

+ 210720 추가.
비슷한 생각을 훨씬 자세하고, 당사자성 있는 방식으로 풀어 쓴 글의 링크를 첨부한다.

"우리는 자격 없는 존재들과 세상을 바꾼다."
https://sexworkproject.tistory.com/25

[2020 성노동 프로젝트 제 3회] 데파코트 : 창녀 페미니즘 선언문, 성노동자들에게 빵과 장미를

창녀 페미니즘 선언문 성노동자들에게 빵과 장미를 데파코트 “성노동창녀들 심리 남자랑 존나 부비면서 돈도 벌 수 있고 계속 일하고 싶은데 몸 파는 년 소리 들으면 자존심 상하니까 어떻게

sexworkproject.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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