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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설

최은영, 밝은 밤

by 연정 2021. 9. 13.

ㅤ'나는 너는 걱정이 안 돼. 그런데 그 약하니까 나중에 자살이라도 하면 네가 책임질 거야?'
ㅤ어떤 말은 듣는 순간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란 걸 알게 한다. 내게는 엄마의 그 말이 그랬다. 엄마는 내게 전화를 해서 나의 이혼으로 엄마가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얼마나 괴롭고 우울한지 호소했다. 심지어 내 전남편에게 연락해서 그의 행복을 빌어주기 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엄마의 눈에는 나의 고통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ㅤ나는 사람들이 남자에게 쉽게 공감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우리의 이혼을 언급하며 나를 욕했듯이, 그가 바람피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조차도 그가 바람피우는 계기를 만들었을 나를 상상하며 비난했듯이 그러나 엄마마저도 자신의 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아들에게 공감하고 나의 고통을 외면했다는 사실에 나는 무너졌다.
ㅤ"아빠는 너 이혼한 거 아무한테도 말 안 하더라."
ㅤ엄마가 무심하게 말했다.
ㅤ"자기 딸이 쪽팔리는가보지."
ㅤ"그래도 너희 아빠 같은 사람 없어."
ㅤ"그래?
ㅤ"아무리 그래도 아빠는 아빠야. 너 그렇게 말하면 안 돼."
ㅤ'남자가 바람 한번 피웠다고 이혼이라니 말도 안 된다. 김서방이 받을 상처를 생각해라. 마음을 넓게 먹어야지. 사람들 다 그러고 살아.'
ㅤ이혼을 결심한 내게 아빠가 한 말이었다. 나보다 사위의 입장을 먼저 고려하는 아빠의 모습은 별로 놀라운 게 아니었다. 아빠가 내 편이 되어주리라는 기대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ㅤ엄마는 해가 지기 전에 일어섰다. 운전을 해서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엄마를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끌차를 끌고 삼삼오오 걸어가는 할머니들이 보였다.

p.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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