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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설

최은영, 밝은 밤

by 연정 2021. 9. 13.

ㅤ지우는 해가 질 무렵이면 전화를 해주었다. 지우는 나를 대신해서 울어주고 욕해주고 나를 걱정해주는 얼마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ㅤ"그 개새끼는 참 뻔뻔해."
ㅤ지우는 내 전 남편을 개새끼라고 불렀다.
ㅤ"개 왜 욕이 됐을까."
ㅤ나는 지후에게 물었다.
ㅤ지우는 개새끼라는 말은 개의 새끼란 뜻이 아니라고 했다. 여기서 걔는 가짜라는 뜻이라고, 그러니까 '정상 가족'이라는 테두리 밖의 '가짜' 자식을 뜻하는 멸칭이라고 했다. 지우는 거기까지 설명하더니 나쁜 말이네, 라고 말하고는 앞으로는 그 단어를 쓰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러더니 개새끼, 미친놈, 씨발놈 어느 것 하나 하나 쓸 만한 말이 없다면서, 인간은 왜 이렇게 치졸하냐고, 왜 꼭 약한 사람을 짓밟는 식으로 밖에 욕을 못 만드느냐고 했다.
ㅤ"참신한 욕이 필요해. 분이 풀리는 욕이 필요해."
ㅤ그것이 지우의 결론이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개새끼라는 단어를 종이에 펜으로 써보았다. 개새끼. 어원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로 그 말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강아지를 떠올렸다. 자기에게 관심도 없는 사람의 바짓자락에 붙어서 꼬리를 흔드는 모습을.
ㅤ왜 개새끼라고 하나. 개가 사람한테 너무 잘해 줘서 그런 거 아닌가. 아무 조건도 없이 잘해주니까, 때려도 피하지 않고 꼬리를 흔드니까, 복종하니까, 좋아하니까 그걸 도리어 우습게 보고 경멸하는 게 아닐까. 그런 게 사람 아닐까. 나는 그 생각을 하며 개새끼라는 단어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나 자신이 개새끼 같았다.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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