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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by 연정 2021. 9. 15.

ㅤ더 이상 테레자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신체 각 부위가 커지거나 작아진다면 그래도 여전히 자기 자신일까? 여전히 하나의 테레자로 남을 수 있을까?
ㅤ당연하다. 테레자가 전혀 테레자를 닮지 않았다고 가정해도 그녀의 영혼은 언제나 변함없을 것이며 그녀 육체에 일어난 일을 경악스러운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ㅤ그렇다면 테레자와 그녀 육체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녀의 육체는 테레자라는 이름에 대해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육체에 이런 권리가 없다면, 그 이름은 무엇과 관계되는 것일까? 오로지 비육체적이며 비물질적인 것과 관련되는 것이다.
ㅤ(이런 질문들은 어렸을 때부터 언제나 테레자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왜냐하면 진정 심각한 질문들이란 어린아이까지도 제기 수 있는 것들뿐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가장 유치한 질문만이 진정 심각한 질문이다. 그것은 대답 없는 질문이다. 대답 없는 질문이란 그 너머로 더 이상 길이 없는 하나의 바리케이드다. 달리 말해보자. 대답 없는 질문들이란 바로, 인간 가능성의 한계를 표시하고 우리 존재에 경계선을 긋는 행위이다.)
ㅤ테레자는 무엇에 홀린 듯 거울 앞에 꼼짝 않고 서서 자기 몸을 마치 이물질인 양 바라보았다. 이물질이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에게 할당된 것. 그것이 그녀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그 이물질은 토마시에게 유일한 육체가 되는 힘을 지니지 못했다. 그 육체는 그녀를 실망시키고 배신했다. 그녀는 밤 새도록 토마시의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다른 여자의 은밀한 냄새를 속수무책으로 맡을 수밖에 없었다.
ㅤ불현듯 그녀는 하녀를 내쫓듯 이 육체를 파면하고 싶었다. 오직 영혼만이 토마시와 함께 있고, 육체는 다른 여성의 육체들이 남성의 육체들과 하는 짓을 똑같이 할 수 있도록 멀리 추방하고 싶었다! 그녀의 육체가 토마시에게 유일한 육체가 될 수 없었고, 테레자 인생의 가장 큰 전쟁에서 패배한 육체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멀리 꺼질지어다, 육체여!

p.226-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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