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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독백

거리

by 연정 2021. 12. 4.

ㅤ사람이 좋다. 그러나 너무 깊게 몰두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 간 오가는 슴슴한 감정을 귀애하고 강렬한 감정은 배재하고자 한다. 간도 안 맞는 그런 관계. 그런 게 좋은 듯하다. 적어도 지금 나에게는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

ㅤ나는 본디 병적으로 자라나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내 세계를 바쳐가며 관계에 몰두했다. 아마 깊은 무의식 속 억압과 결핍이 만들어낸 집착 기제이리라. 사랑을 병처럼 앓는다는 건 나 같은 사람들에게 해당된다. 진심을 조금 보태자면 질투도 자주 했고, 애착의 대상이 나를 더 봐주길 바랐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자신이 못나 보인다는 생각에 이중 삼중으로 날 걸어잠그고 스스로 행동을 통제했는데 이 태도가 제법 주위 사람들을 외롭게 만들었나 보다. 마음을 덜고 덜어서 주는 조각도 클까 봐 조심스러웠다. 헤어진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항상 부족하거나 불안하거나 둘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그게 더 나은 것 같다. 부족한 것 말이야. 미안, 내가 결핍에 익숙한 사람이라 이제 넘치면 견디지를 못한다.

ㅤ조금 아쉽고 조금 서운하고 조금 실망하고 조금 벌어지고. 이 정도 틈이 있는 게 좋은 것 같다. 허구의 작품 속에서나 ‘완벽한 짝’을 갈구하지, 인생에서 내게 딱 들어맞는 짝을 찾아버리면 내게 제일 가는 파멸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나는 절제를 잃고 그 짝에게 내 인생을 갖다 팔아버릴 것이기에. 그리고 우리 둘은 너무 서로에게 들어맞아 서로를 벗어날 생각도 못할 텐데. 끔찍하지 않나? 주위의 모든 것들을 지워버릴 관계. 모든 것의 일 순위를 차지하는 관계. 그런 견고함을 생생히 느끼는 순간 나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ㅤ나는 죽기 싫다.
ㅤ죽지 않으려면 적당히 살아야 한다.
ㅤ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는 매번 빈다.
ㅤ제발 이 사람의 어느 곳쯤은 나와 크게 어긋나게 해달라고.
ㅤ그래서 내가 감히 짝으로 생각 않게 도와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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