ㅤ그런 시기다. 자해가 유일한 자유처럼 느껴지는 물러터진 시기. 그것도 아주 사소한 해로움으로 내 목숨을 축낸다. 이를 테면 불면. 방만. 비읍과 미음의 모음으로 이루어진 것들. 내 인생으로 보이는 표상 중 내 선택으로 이룬 건 얼마 없다는 게 참 웃긴 사실이다.
ㅤ나는 전형적인 회피형 애착인 사람이다. 남이 급격히 친밀히 다가오면 좋으면서도 그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무진 애를 쓴다. 그가 바라는 내 모습이 무엇인가를 알아내지 못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그러나 쉽게 풀리는 퍼즐은 두 번 다시 풀려 노력하지 않듯이 단순한 사람들에게서는 금방 관심이 흩어진다. 어쩔 수 없다는 것, 안다. 수 달 전까지만 해도 이런 성향을 자책하고 비난하기 일쑤였는데, 결국 이도 문턱을 넘어봤냐 없냐의 차이로 결정되는 성향 같아서, 근데 그 문턱은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 외부에 의해 정해지는 것 같아서, 그래서 자책과 비난과 검열을 멈췄다. 선택할 수 있는 일에는 책임을 지겠지만 아닌 일에 대해 자학할 필요가 있는가?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뻔뻔해지기로 했다.
ㅤ이렇듯 선택에 대해서 관대해진 내 태도가 결국 자해까지 용인하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조금 더 ‘건설적인’ 자유가 될 수는 없었나 고민을 해보고 싶었어, 나도. 근데 그런 판단으로부터 도망칠 자유가 없더라고. 건설적인 것 아니면 비건설적인 것이라는 이분법을 눈앞에서 치우고 싶었다. 열심히 사는 것 지겹다. 열심히 살아도 불행하다. 단지 세상에 불합리가 넘쳐서 불행한 게 아니라, 어떤 의미도 없이 생존만을 도모하니 불행한 것이다. 그 안에서 가꾸는 사소한 문화 생활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지만 아는 단발적이라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결국 ‘나는 왜 사는가?’로 회귀한다. 태어났으니 사는 걸 텐데. 그럼 좀 덜 피곤할 수는 없을까. 적성에 안 맞는 삶을 바꿀 수는 없을까. 이 고착화돤 계급 사슬이 너무 갑갑하다. 벗어던지고 싶다.
기록/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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