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에 대해.
사람의 마음을 톺아보는 일은 항상 어려웠다. 내 언어가 다른 사람의 언어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서는 특히, 더. 내가 별 뜻 없이, 진심으로 한 말이 남을 상처 입힐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에게 맞춰보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은 내 말을 이해해주지 않았다. 사랑한다고 했는데 사랑받지 못 한다고 그들은 외로워했다. 사랑이 아니라고 했다.
그들을 사랑했기에 그들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게 내 패착이었을 수도 있다. 그들은 내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그게 그 평가의 의도였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진의는 중요치 않다. 내가 행동을 바꾸면 그들은 사랑받는다고 여겼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다 같은 사람인데 말이다. 사랑을 향한 내 자세는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나의 말이 다르게 받아들여진 걸까.
혹자는 내가 게으르다고 한다. 혹자는 내가 무심하다고 하고. 그게 아니다. 그냥 안 되는 것일 뿐이다. 당신들의 기호 체계를 이해하기엔 내가 당신들과 너무 다른 사람이다. 정보가 너무 많이 들어와. 그래서 중요한 것만 털어내고 그 점 몇 가지에만 주목하면 당신들은 기어이 상처받았다 말한다. 왜냐고 물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댄다. 날 것의 마음 그대로 드러내면 안 되는 걸까···. 이런 가정 역시 게으르다고 비판 받겠지. 그래서 혼자 있기로 했다. 혼자 있는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기진 않는다. 익숙한 고독이고, 때로는 이 고독 덕분에 살 수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외로움을 안 느끼는 게 아니다.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런데 상처 주기는 죽어도 싫다. 당신이 아프면 내가 아파. 내가 결국 당신에게 상처 줄 것 같으면 차라리 만나고 싶지 않다는 것. 이기적이라고 해도 별 수 없다. 내가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부분이 있다. 나는 항상 연락이 잘 되는 상태를 유지하기 힘들다. 내가 힘들 때 남을 대하면 집중 자체가 안 된다. 그저 쉬고 싶어진다. 연인도 마찬가지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날 조금 혼자 내버려뒀으면 해서. 그런데 그게 되지 않는다며 화를 내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매번 보고하고, 달래주고, 사과해야 하는데. 미안하지는 않다. 그저 당신 마음이 풀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나는 사람을 잘 사랑하지만 그만큼 사람의 악의가 얼마나 지독한지 알고 있다. 미움 받고 싶지 않다. 인생을 훼손당하고 싶지 않다. 그럼 당신까지 망가져야 하는데 아픈 사람 둘이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진심으로 복수를 원한 적 없다. 그냥 솔직한 사과면 됐다. 근데 그 사과가 어려워서 상처 주는 사람이 많을 뿐이다. 더는 상처 받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연애를 하지 않는다. 사랑은 한다. 연정은 아닐 테다. 연정은 연애 수행 욕구를 가리키는 말일 텐데, 나는 그런 욕구가 없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을 채우지 못 할 것을 내가 너무 잘 안다. 기본적이라 말하는 것들을 나는 지키지 못 한다. 그럼 상대는 슬퍼한다. 어차피 실패할 연애에 대한 욕구를 가져본 지 꽤 오래 되었다. 만약 기준이 나에게 맞았다면, 나는 별 생각 없이 연애에 대해 열린 사람이 되었을 테다. 나의 마음이 사랑인지 아닌지 구분하려는 노력도 덜 했을 거고. 압박도 덜 받았겠지. 사랑에 대한 검열이 적었을 테니까. 좋아하는 사람한테 고백을 하고. 사귀고. 사랑한다는 말을 이해받고. 감정을 교류하고. 만나고 싶을 때 만나고. 마음 혹은 상황이 영 아니면 헤어지고. 그랬을 텐데.
하지만 만나고 싶을 때 만나는 건 못 할 일이지. 상대가 힘들 때 곁에 있어줄 수는 있지만, 정기적으로 만나는 게 애정의 증명처럼 되는 건 못 견디겠다. 내가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게 어쩌다 주기적인 일이 될 수도 있지만, 항상 그러란 법이 없으니까. 지금은 만나기 싫다는 게 내 진심인데 이 진심을 듣고 상처 받는 사람들은 어떻게 달래줘야 할까. 한동안 혼자 있고 싶다는 말도. 언제까지 이어질 것 같냐 물어보면 난감하다. 어쩌면 평생. 그렇지만 보통은 일주일 정도.
나는 타인과 속도가 다른 것 같다. 나만 느리다. 타인은 대부분 빠르다. 내 마음은 천천히 달궈져 오래 가는 데에 비해 상대는 빨리 불타오르고 빨리 식는다. 나는 한 번 식으면 그 식은 마음도 오래 간다. 그래서 되도록 식지 않게 두려고 내가 노력을 많이 하지만, 그 노력을 따라 같이 발을 맞춰주는 상대는 잘 못 봤다. 여유가 될 때 말을 걸면 이미 늦었다고 하더라. 그걸 왜 지금 말하냐고. 이런 말들을 듣기 싫다.
그래서 난 포기했다. 나는 이해 받는 걸 사랑의 미덕으로 여긴다. 이해 받지 못 할 걸 너무 잘 알아서 연애 수행 욕구를 버렸다. 내가 주는 만큼은 아니더라도 절대적인 어떤 감정은 받고 싶은데, 그런 관계가 나의 약점을 들추어 상처만 자아낸다면 내가 굳이 바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래도 세상의 기준에서 정정하고 싶은 부분 한 가지는. 감정과 수행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이 꼭 너와 연애 수행을 하고 싶다는 말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진심을 말하면 누군가는 우는 사회라 입을 다물기로 했다. 다른 형태의 관계는 진정 없을까. 조금 더 명징한 단어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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