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일회용 여름
검색하기

블로그 홈

일회용 여름

lqvesixk.tistory.com/m

백업용 블로그

구독자
3
방명록 방문하기
공지 공지 모두보기

주요 글 목록

  • 활동가의 열광은 자신의 일을 무효로 돌려놓는다. (…) 그것은 자신이 하는 일의 결실을 파괴한다. ㅤ‘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ㅤ얼마 전에 넥슨의 집게 손가락 일루미나티 설로 남초 커뮤니티 등지에서 발칵 뒤집혔던 사건이 있고, 그 일에 대한 후폭풍으로 sns 등지에서는 촌초로 부당해고에 대한 반대 발화와 페미니즘 사상 탄압 금지 발화가 이어졌다. 그 중심에는 두 활동가 분이 계셨다. 그분들의 활동에 감사를 표하고 지지와 연대를 보낸다. 하지만 활동가 분의 아동 성착취물에 대한 나이브한 스텐스에 마음 한 켠이 비통해지는 건 어째서였을까. ㅤ솔직히 나는 일련의 플로우에 대해 전혀 관련 없는 제삼자였다. 그저 두 활동가들이 대신 나서서 싸워 주심에 감사함을 느끼던 찰나, 일각에서 제기하는 문제들이 눈에 들어온 게 이 지리한 비통함의 시작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해당 활동가 .. 공감수 1 댓글수 0 2023. 12. 3.
  • 출생기 ㅤ신은 스스로 태어나기를 결정했다. ㅤ그가 만들어낸 인간은 신의 귀속을 받아 태어남을 당하고 죽음을 당한다. 신은 이를 통해 인간과 신의 완벽한 위계를 만들어냈다. 인간이 신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단 한 가지에 있다. 출생과 사망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부조리. ㅤ그 언젠가 신이 죽음을 결정한다면 인간은 신의 결정에 그저 수긍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는 즐겁게 죽으러 갈 것이고. 인간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삶과 죽음을 반복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ㅤ그렇게 신으로부터 잊혀져 신의 부름을 받기를 영원히 기다릴 것이다. ㅤ이것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영원이라는 개념이다. 부조리와 무능. 공감수 2 댓글수 0 2023. 12. 2.
  • 자유 ㅤ이제는 조금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ㅤ내가 여전히 타인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괴로워한다는 사실이 괴롭다는 게 아니라, 여전히 그 기억에 붙들려 자유로워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괴롭다. 얽매임. 그 자체가 괴롭다. ㅤ어쩌면 상처 받기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일 테다. 하지만 한켠으로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고 있다. 세상은 비가역적으로 흘러간다. 가역적으로 돌이킬 수 있는 것들은 없다.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몰라도. 반대 방향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 모습이 선형이든 원형이든 어떻든 간에. ㅤ그러니까, 내가 가정하는 멋진 인간상은 나를 상처 준 사람의 소식을 들어도 무탈할 만큼 강인한 마음을 갖는 것일진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괜찮지 않을 것이다... 공감수 1 댓글수 0 2023. 12. 2.
  • 밀란 쿤데라, 무의미의 축제 ㅤ한 여자가 ㅤ차에서 ㅤ나온다 ㅤ작은 차 하나가 강을 따라 난 길을 달린다. 변두리 끝자락과 시골 사이 어디쯤, 집이 점점 드물어지고 행인도 없는 곳, 찬 아침 공기에 그 볼품없는 풍경이 더 처량해진다. 차가 길가에 멈추고, 그만하면 미인이라 할 젊은 여자가 내린다. 이상한 일이다. 여자가 자동차 문을 아무렇게나 툭 밀치기만 하는 것을 보면 문이 잠기지 않은 게 분명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도둑들의 시대에 이토록 부주의할 수는 없을 텐데, 이는 무슨 의미일까? 그녀는 그렇게 정신이 없는 걸까? ㅤ아니, 정신없어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그녀의 얼굴에는 결연한 의지가 서려 있다. 이 여자는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를 안다. 이 여자는 의지 그 자체다. 그녀는 강에 놓인 다리를 향해 몇백 미터쯤 걷는다. 꽤 높고 .. 공감수 0 댓글수 0 2023. 7. 14.
  • 현대 문학 속 퀴어 당사자성에 대한 짧은 소견 — 정세랑 김초엽이 만들어 낸 sf 페미니즘 문학 속에 결여된 당사자성 ㅤ사실 이 글은 쓰지 않고 못 배길 것 같아서 쓰는 거다. 그러니까 입에 가시가 돋칠 것 같아서 쓰는 거다. 솔직히 누가 관심이 있을까 싶지만 그냥 자기만족으로 쓰는 글이니 편협해도 이해해 주길 바란다.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으로 보는 요즘 문학에 대한 글이다. 일단 난 현재, 그러니까 202X년 대의 현대문학을 그렇게 긍정적으로 읽고 있지 않다. 책을 적게 읽진 않았지만 많이 읽은 편도 아니라 어느 정도 납작한 관점이 녹아 있을 순 있다. 아무튼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정세랑, 김초엽 등의 작가들이 당사자성 없이 여성애를 그려내는 것에 이상한 유감을 갖고 있다. ㅤ김초엽을 처음 읽은 건 을 통해서였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공감수 0 댓글수 0 2023. 6. 15.
  • '한남 유충'이라는 단어 사용에 대한 반대 논리 유충이라는 말을 쓰는 게 좋은 미러링 화법이라고 생각 않는다. 특히 여아들에게 '유충'이라는 말을 가르치는 게 좋은지 모르겠다. 결론만 말하자면 사회가 남아와 여아를 구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유충이라고 남아를 깎아내릴 때 다분히 반격 당할 여지가 크다. 한녀 유충 같은 말로. 그럼 어쩔 텐가. '이십대 남성'들은 현재의 사회가 '여성우월주의' 사회라고 믿으며 엄청난 피해 의식을 갖고 있다.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했을 특권들을 여자들이 빼앗아 갔다고 믿으며 여성을 혐오할 사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니까 그런 '역차별도 차별이다' 같은 얘기를 할 수 있는 거다. 이 새끼들은 교묘해서 논박을 해도 들어 처먹지를 않는다. 그냥 지들 생각하기에 지들한테 불리한 건 그걸 왜 남자 탓하냐고 하고 지.. 공감수 0 댓글수 0 2023. 6. 1.
  • 확신 당신은 어땠을까. 나를 기다렸을까. 기다리지 않았다 한들 내가 당신을 생각하는 동안 당신이 나를 생각했을 거란 확신이 있다. 그러면 다시 슬퍼진다. 당신은 그러지 않아야 하고, 나는 당신이 그러지 않기를 바라야 한다. 무엇 하나 지켜지지 않은 상황을 반길 수는 없다. 그래서 내 생각을 할 법한 당신이 슬퍼 보인다고 말한다. 그게 나의 최선이었다. 공감수 0 댓글수 0 2022. 8. 2.
  • 임현, 고두 ㅤ그런 사람으로 나는 살고 싶지 않았단다. 부끄러움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지. 그러나 그것은 내가 보다 선량한 인간이라서가 아니다. 다만 아버지가 모르는 걸 내가 알았을 뿐. 그렇게 사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쪽이 더 이익이 된다는 걸 말이다. 모든 이타적인 행동에는 이기적인 의도가 숨어 있단다. 선물을 준다는 것은 돌려받을 대가를 바라서 이고 남을 위한 칭찬은 곧 나의 평판으로 이어져서 훗날을 도모하는 밑거름이 되지. 알아듣겠니? 지금 당장에 손해처럼 보이는 행동들이 나중의 이익을 담보하게 된단다. 손해 아니라 투자. 선물 아니라 거래. p.43-44 공감수 0 댓글수 0 2022. 8. 2.
  • <헤어질 결심>은 불륜 미화를 안 하는데, 본 사람들은 상당히 불륜 미화를 하고 있네요. 영화 스포일러 다량 함유하고 있으므로 열람에 주의하세요. 이 뜨거운 감자라 나도 봤다. 잘 만들었고 어떤 부분에선 좋다고 느낄 만큼 마음이 동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처음 볼 때는 마지막 장면의 충격을 고스란히 느껴서 좋았던 부분은 다 휘발됐었다. 그리고 친구랑 다시 봤을 때 비로소 영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는데, 영화를 다 소화하니까 사람들이 이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이 굉장히 기이하다고 느꼈다. 혹은 기만이거나. 단적으로 말하면, 글의 제목처럼 헤결을 본 사람들이 불륜 미화를 하는 실정이다. 자각 없이 불륜을 순정으로 소비하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비위가 조금 상했다. 헤결이 불륜 미화 영화가 아니라면, 둘의 사랑은 어쨌든 불륜이니 소비할 때 마냥 아름답게만 소비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적 자각이 바로.. 공감수 0 댓글수 0 2022. 7. 21.
  •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이렇게 되면 그토록 명백하고 그토록 정복하기 어려운 부조리는 한 인간의 삶 속으로 되돌아와 그의 고향을 되찾는다. 이때 역시 정신은 명석한 정신의 노력이라는 삭막하고 메마른 길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 길은 이제 일상생활 속으로 접어든다. 그 길은 이름 없는 ‘세인(世⼈)’의 세계와 합류하지만 인간은 이제부터 그의 반항과 통찰력을 간직한 채 그 곳으로 되돌아간다. 그는 희망을 갖지 않는 법을 배운 것이다. 현재라는 이름의 지옥, 이것은 마침내 그의 왕국일 수밖에 없다. p.94 공감수 0 댓글수 0 2022. 6. 8.
  • 이해 ㅤ나의 만용일 순 있겠으나, 이 세상에 이해 받지 못할 것이란 없다고 본다. 타인과 타인이 조금의 교집합도 없을 순 없기 때문이다. 비둘기 둥지의 법칙과 같다. 모든 둥지가 만석이면 내가 들어갈 곳은 적어도 둘은 있는 것이다, 비둘기의 알이. 그런 셈이다. 나의 사랑도 이해 받지 못할 구석이란 없다. ㅤ내 사랑은 너무 넓어서 누구든 구겨넣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반대로 누구든 사랑할 수 있기에 누구와도 계약적 관계는 맺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사랑한 만큼 사랑 받을 마음이 없으며, 사랑 받은 만큼 사랑할 마음도 없다. 사랑한다는 말이 나의 행동을 보장하진 않는다. 나는 언령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하여 나는 혼자 사랑한다. 사랑을 혼자 할 수도 있다. 사랑은 감정이지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감수 0 댓글수 0 2022. 4. 18.
  • 220418 월경이 끝나면 불면이 찾아와 나를 괴롭힌다. 쌍으로 아주 북새통 난리다. 한꺼번에 오거나 아주 안 올 수는 없을까. 공감수 0 댓글수 0 2022. 4. 18.
  • 220329 ㅤ책임이 언제부터 일방향적인 말이 되었어? 공감수 0 댓글수 0 2022. 3. 29.
  • 220328 ㅤ의미 부여는 하기 나름이지만 의미 창출은 하지 못한다. ㅤ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ㅤ행간에 걸친 의미를 알고 싶은 마음을 경시한다. ㅤ없을 거라고 말한다. 지운다. ㅤ무시와 삭제는 결이 다르다. ㅤ나는 한 번도 두 결에 파묻히고 싶다 말한 적 없다. 공감수 0 댓글수 0 2022. 3. 28.
  • 한강, 흰 ㅤ이 낯선 도시에서 왜 자꾸만 오래된 기억들이 떠오르는 걸까? ㅤ거리를 걸을 때 내 어깨를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는 거의 모든 말, 스쳐지나가는 표지판들에 적힌 거의 모든 단어를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움직이는 단단한 섬처럼 행인들 사이를 통과해 나아갈 때, 때로 나의 육체가 어떤 감옥처럼 느껴진다. 내가 겪어온 삶의 모든 기억들이, 그 기억들과 분리해낼 수 없는 내 모국어와 함께 고립되고 봉인된 것처럼 느껴진다. 고립이 완고해질수록 뜻밖의 기억들이 생생해진다. 압도하듯 무거워진다. 지난여름 내가 도망치듯 찾아든 곳이 지구 반대편의 어떤 도시가 아니라, 결국 나의 내부 한가운데였다는 생각이 들 만큼. 공감수 0 댓글수 0 2022. 3. 8.
  • 손미, 전람회 한번 만나요 매일 멸망하고 있으니까 안 그러기로 했는데 만나자고 해서 미안해요 북반구가 흩날리는 미술관에서 등에 붙은 꿀벌은 비상구로 날려 주고 한번 만나요 아직 돈이 없어서 미안해요 옷에 불을 질러서 미안해요 사람들이 울먹이며 복음서를 읽는 세기말이니까 땅이 뒤집혀 생긴 추상화에서 봐요, 우리 해골이 얼마나 자랐는지 보여 줘요 살았는지 확인해 보려고 어깨를 건드리는 거리에서 당신이 돌아보았을 때 종말을 전시하는 비엔날레 현수막이 펄럭인다면 여기가 세상 끝이니까 하늘에서 윙윙 벌이 쏟아지니까 더 움직일 수 없으니까 재난 경보음이 울리는 미술관에서 한번 봐요, 우리 밖에서 보자고 해서 미안해요 살아 있는 당신을 오래 관람해서 미안해요 창밖은 부옇고 우린 더 이상 알아볼 수 없으니까 딱 한 번만 만나요 공감수 0 댓글수 0 2022. 2. 22.
  • 220128 ㅤ삶이 버거워서 네가 미운 건지, 혹은 네가 버거워서 삶이 미운 건지 알 수 없는 겨울이다. 공감수 0 댓글수 0 2022. 1. 28.
  • 백석, 바다 바다ㅅ가에 왔드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올으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은 것만 같구려 바다ㅅ가는 개지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 비눌에 하이얀 해ㅅ볓만 쇠리쇠리하야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섦기만 하구려 공감수 0 댓글수 0 2022. 1. 13.
  • 220101 ㅤ나는 너를 좋아한다. 감히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너를 좋아한다는 감정만큼은 확실하다. 소리내어 말할 수는 있어도 받아들이는 뉘앙스의 차이는 분명히 있을 테다. 하지만 그 모든 복잡한 문제들을 제쳐두고, 나는 너라는 사람이 좋다. 나는 너를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들은 너의 안부에 타국으로 유학을 갈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같이 동봉돼 있어서, 그런 바람은 애진작 접었다. 대신 너와 만나는 시간을 늘렸다. 시덥잖은 이유로 볼 기회를 늘려가면서까지 함께 있는 시간을 늘렸다. 다른 의미가 있었다기보다는, 너랑 있으면 즐거우니까. 그리고 네가 이 땅을 떠난 3년 동안은 너와 자유롭게 연락할 수 없을 테니까. 매일 네가 떠날 날을 생각하며 너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게 너무 당연.. 공감수 0 댓글수 0 2022. 1. 1.
  • 탈진실 시대의 코로나-19 백신 ㅤ진실이란 대체 뭘까. ㅤ포스트 휴머니즘이 논의되는 시대에 포스트 트루스(탈진실)를 먼저 겪어야 한다는 것이 참담하다. 내가 상상한 202n년대는 이렇지 않았는데. 이렇게 거짓된 정보로 공포를 조장하여 편을 갈라치고 양극화되어 의미 없는 싸움을 할 거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는데. 말도 안 되는 삼류 소설의 설정쯤으로 치부될 일들이 요즘 벌어지고 있고, 나는 그걸 생생히 목격하고 있다. 참담한 심정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ㅤ일전에 나는 ‘탈진실’ 시대를 설명한 책 몇 권을 읽었기에 이 현상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다. 다만 논리적인 납득이 도저히 되지 않는 상태다. 반지성주의의 도래라고 하기엔 어딘가 들어맞지 않는다. 이것은 거대한 자아 투영의 장이다. 대규모 가스라이팅의 장이라고 보인다. 의 저자 장 샤를.. 공감수 0 댓글수 0 2021. 12. 23.
  • 이디스 워튼, 여름 ㅤ채리티는 실망했지만 사정을 이해했다. 로열 씨를 그날 그토록 풀이 죽게 만든 것은 스탁필드에서 마주친 온갖 유혹이 아니라 그녀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무척이나 ‘외로운’ 사람이었다. 채리티 자신이 너무나 ‘외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로열 씨와 채리티는 그 쓸쓸한 집에서 서로 얼굴을 맞대고 고독의 깊이를 헤아리곤 했다. 채리티는 그에게 특별한 애정이 없었고, 눈곱만치도 고마음을 느끼지 않았다. 다만 그가 주위 사람들보다 더 우월하며, 자신이 그와 고독 사이에 놓인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동정할 뿐이었다. 따라서 하루 이틀이 지난 뒤 해처드 부인이 네틀턴에 있는 학교 문제를 상의하고 이번에는 그녀의 친구가 ‘필요한 준비를 해 줄’ 거라는 말을 하려고 .. 공감수 0 댓글수 0 2021. 12. 14.
  • 시간 속의 무수히 많을 나와 너 어느 한 순간의 특이점으로 나와 너는 서로 화해하지 못할 사람이 된다. 너는 나였다. 나는 너일 것이었다. 이제 나는 너를 용서할 수 없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너를, 이해할 수 없다. 아주 긴 시간 속에서 머나먼 우주에서 쳐다보면 짧은 순간일 그 인생에서 나와 너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로 갈라지고. 삶이 지나갈수록 남은 수명이 깎여 나갈수록 나는 너의 너들과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가 내쳤다가 안았다가 찔렀다가 찔렸다가 죽였다가 살렸다가 변덕을 부리며 너의 너들을 회상한다. 어느 날은 나의 나가 너를 용서하겠지만 그건 내가 아닌 시간들의 이야기다. 나는 나의 나들로부터 질타 받고 질투 받고 질책 받다가 아주 조금 사랑 받으며 상처 투성이에 돋아나는 새살처럼 무용하게 고립될 것이다. 나는 끝내 너를 안을 수.. 공감수 0 댓글수 0 2021. 12. 6.
  • 기대와 배신 ㅤ기대를 가지면 꼭 배신 당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큰 기대는 안 하게 됐다. 그런데 사람 사이에는 어쩔 수 없이 기대하게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애써 외면하려는 것들. 그러다 실체를 어림짐작해야 할 때가 올 때, 내 상상과 달라 기대가 부서질 때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껏 그래 왔던 대로 나만 실망하고 끝나면 될까? 아니면 나의 서운한 감정에 대해 토로해야 할까? ㅤ직설적으로 당신한테 실망했다고 말하는 건 내가 제일 못하는 짓이다. 역시 직접적인 가해자가 되는 건 싫다. 그런데 아쉽고 서운한 마음은 가시질 않아서 어떤 식으로든 올라오게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역시 직언을 하는 게 답인가. 내가 그 직언들로 상심했던 날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데, 내가 그래도.. 공감수 0 댓글수 0 2021. 12. 5.
  • 거리 ㅤ사람이 좋다. 그러나 너무 깊게 몰두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 간 오가는 슴슴한 감정을 귀애하고 강렬한 감정은 배재하고자 한다. 간도 안 맞는 그런 관계. 그런 게 좋은 듯하다. 적어도 지금 나에게는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 ㅤ나는 본디 병적으로 자라나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내 세계를 바쳐가며 관계에 몰두했다. 아마 깊은 무의식 속 억압과 결핍이 만들어낸 집착 기제이리라. 사랑을 병처럼 앓는다는 건 나 같은 사람들에게 해당된다. 진심을 조금 보태자면 질투도 자주 했고, 애착의 대상이 나를 더 봐주길 바랐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자신이 못나 보인다는 생각에 이중 삼중으로 날 걸어잠그고 스스로 행동을 통제했는데 이 태도가 제법 주위 사람들을 외롭게 만들었나 보다. 마음을 덜고 덜어서 주는 조각도 클까 봐.. 공감수 0 댓글수 0 2021. 12. 4.
  • 사람이 사람을 살릴 수 있을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손미 시집 제목 변용. ㅤ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사랑을 모른다. 정확히는 항간에서 통용하는 사랑을 내밀히 알지 못한다. 경험한 적 없다고 생각한다. 연정이라는 이름을 내걸었으나, 정작 내 자신은 연정을 나눠본 일이 전무하다. 그런 연유로 나는 내가 사랑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산 세월이 아주 길었다. ㅤ가족들은 화가 날 때면 내게 가족애가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니라고 반박해야 하는데 만약 그 말이 맞다면. 가능성 하나에 발목 붙들리는 사람을 봤는가? 내가 그렇다. 정말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며 나를 의심하며 살았다. 언젠가는 사랑을 배울 수 있으리라. 아직은 부족할 뿐이다. 그때까지만 미완인 나를 감추고 살자. 살아내기만 하면 된다고. 어차피 배우고 외우는 건 내.. 공감수 0 댓글수 0 2021. 12. 3.
  • 지옥 타인 ㅤ타인과 함께 있을 때 나는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지옥을 꿈꾼다. ㅤ즐거운 타락. ㅤ나는 웃고 있지만 실은 사람들을 재어보고 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곤경에 처할까. 이 가느다란 실 같은 인연이 버틸 수 있는 한계에서 아슬아슬하게 힘을 주며 늘렸다 줄이기를 반복한다. 오직 사고 실험으로만 행한다. 그리고 나는 가장 안전한 길을 택해 안전한 자신을 연기한다. 제일 문제 생기지 않을 정도의 자아를 그에게 건넨다. 이 문제란 우리 둘만의 것이다. 나와 네가 결부된 갈등. 나는 그게 달갑지 않다. ㅤ어느 순간부터 고백이 힘들어졌다. 솔직히 말할 때 받을 시선이 무섭다, 라는 말은 이미 바랬다. 남들 시선이 무섭다기보다, 청자 중 높은 사명 의식을 가진 이가 다가와 나를 교화시키려드는 게 싫다고 해야 할지. 멋.. 공감수 0 댓글수 0 2021. 11. 20.
  • 무제 튿어버린 마음에는 죄가 없다. 때묻지 않았던 시절은 이제 검게 타버렸으니 다시 시작할 일만 남았다. 애쓰는 이를 보며 웃는다. 웃지 않는다. 실은 거울 앞이다. 징그럽다. 공감수 0 댓글수 0 2021. 11. 19.
  • 송승언, 재의 연대기 우리가 말한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이룬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한때 우리에게 집이 없었고 우리가 집을 갖게 되고 우리가 집이라 불렀던 곳이 산의 장막 되고 그 장막 거두어질 때 너희의 장소 될 때 그들의 터 되고 아무의 것도 아닌 자연 될 때까지 우리는 말했고 우리는 이루었지만 우리가 하려던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믿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집에서 연기 나고 불이 집을 삼키고 무너져 내린 잔해 속에서 겨우 명멸하고 있는 잉걸불로 남았을 때 입 없던 우리가 입 만드느라 흘린 피가 입술 되고 뚫린 입에서 나오는 신음이 말 되고 절반은 알아들을 수 없는 그러므로 절반은 분명하게 들리는 말을 하면서 우리의 얼굴은 분노 슬픔 기쁨 뒤섞여 저들 꿈속의 괴물을 닮아 갔지만 우리가 말한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살.. 공감수 0 댓글수 0 2021. 11. 19.
  • 김선우, 비바리, 잃어버린 구멍 속 ㅤㅤ지하도를 나오는데 눈이 내렸다 검은 눈발 속에서 쏟아져 나와 ㅤㅤ출구에 들러붙는 비바리 떼, 내 구멍이······ 어디로 간 걸까······ ㅤㅤ이 도시는 하나의 구멍으로 규정된다 비바리, 너에게 갈 수가 없다 ㅤ돌담 속 너의 꽃잠 만진 적 있지 ㅤ어슷어슷 검은 돌 올려 쌓은 돌담엔 ㅤ돌의 수만큼 다 다른 구멍이 있어 ㅤ바람이 날마다 다른 페이지로 열렸네 ㅤ점자로 읽고 읽히면 바람과 놀다 너의 잠을 엿보았지 ㅤ다 다른 구멍 속의 살굿빛 처녀들 ㅤ몸빛 스며든 구멍 속이 너무 환해서 ㅤ세찬 바람에도 섬의 돌담 무너지지 않았네 ㅤ구멍 속에서 돋아난 빛들 저마다 고와졌네 ㅤㅤ비바리, 명랑한 체위의 망명자여 너의 고향은 머나먼 열대라 했다 ㅤㅤ다 다른 구멍을 향한 너의 열망이 다 다른 구멍을 가진 이 섬의 돌.. 공감수 0 댓글수 0 2021. 11. 16.
  • 윤솜/와리, 연애는 전쟁 나는, 아직 너무 겁이 많고. 내 감정을 똑바로 들여다보지 못해서. 어떻게든 네게 다가가기 위해 비겁한 명분이라도 만들어야 해. 그게 너를 상처입히는 일이라 해도. 24화 공감수 0 댓글수 0 2021. 11. 16.
    문의안내
    • 티스토리
    • 로그인
    • 고객센터

    티스토리는 카카오에서 사랑을 담아 만듭니다.

    © Kakao Co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