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시
손미, 전람회
연정
2022. 2. 22. 22:49
한번 만나요
매일 멸망하고 있으니까
안 그러기로 했는데
만나자고 해서 미안해요
북반구가 흩날리는 미술관에서
등에 붙은 꿀벌은 비상구로 날려 주고
한번 만나요
아직 돈이 없어서 미안해요
옷에 불을 질러서 미안해요
사람들이 울먹이며 복음서를 읽는 세기말이니까
땅이 뒤집혀 생긴
추상화에서 봐요, 우리
해골이 얼마나 자랐는지 보여 줘요
살았는지 확인해 보려고
어깨를 건드리는 거리에서
당신이 돌아보았을 때
종말을 전시하는 비엔날레
현수막이 펄럭인다면
여기가 세상 끝이니까
하늘에서 윙윙 벌이 쏟아지니까
더 움직일 수 없으니까
재난 경보음이 울리는 미술관에서
한번 봐요, 우리
밖에서 보자고 해서 미안해요
살아 있는 당신을
오래 관람해서 미안해요
창밖은 부옇고
우린 더 이상 알아볼 수 없으니까
딱 한 번만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