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열광은 자신의 일을 무효로 돌려놓는다. (…) 그것은 자신이 하는 일의 결실을 파괴한다.
ㅤ‘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ㅤ얼마 전에 넥슨의 집게 손가락 일루미나티 설로 남초 커뮤니티 등지에서 발칵 뒤집혔던 사건이 있고, 그 일에 대한 후폭풍으로 sns 등지에서는 촌초로 부당해고에 대한 반대 발화와 페미니즘 사상 탄압 금지 발화가 이어졌다. 그 중심에는 두 활동가 분이 계셨다. 그분들의 활동에 감사를 표하고 지지와 연대를 보낸다. 하지만 활동가 분의 아동 성착취물에 대한 나이브한 스텐스에 마음 한 켠이 비통해지는 건 어째서였을까.
ㅤ솔직히 나는 일련의 플로우에 대해 전혀 관련 없는 제삼자였다. 그저 두 활동가들이 대신 나서서 싸워 주심에 감사함을 느끼던 찰나, 일각에서 제기하는 문제들이 눈에 들어온 게 이 지리한 비통함의 시작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해당 활동가 분의 아동 성착취물 소비에 대한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이들은 극히 적음에도 해당 활동가 분이 아동청소년보호법 사각지대에 놓인 창작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로리 야짤’을 좋아하고, 활동하는 공개적인 계정으로 해당 사진에 남긴 마음을 회수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 표명이 아동 성착취물 소비에 대한 비판을 입막음하게 되어 그 부분이 비통했다.
ㅤ정확히는, 남성 페미니스트를 자처하시는 활동가 분께서 남성 본인이 공격 당하면 여성들에게 손해일 것이고 여성들은 자신을 음해하는 집단이 제기한 문제를 검토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에게 휘둘리는 것이라는 말을 긴 타래로 올리신 걸 보고. 마음이 참 비통했다. 활동가 분의 활동이 감사하고, 현 상황에 많은 도움을 주신 게 사실이나. 기회를 주는 듯한 뉘앙스. 그리고 여성들의 피해 사례를 남성 권력을 쥔 본인이 언급하신 건 오만한 비유라는 걸 아시는 듯 모르시는 듯 행하시는 자신만만한 태도가 비통했다.
ㅤ활동가 분이 사회적으로 활동하는 계정에서 일어난 아동 성착취물 호감 표시는 사회인으로서 비판 받아야 명백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건 남초 인셀이 공격의 무기로 삼든, 트랜스 배제적 페미니스트들이 공격의 무기로 삼든. 비판 받을 점이 합당하다면 당연히 비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비판이 결코 이 운동을 지지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그저 몰상식한 행위에 대한 자정을 요구하는 걸 테다.
ㅤ물론, 공격을 ‘전방위’에서 받는 입장이니만큼 의견이 다르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그게 결코 본인이 도왔던 여성 창작자의 사례를 본인의 아동 성착취물의 공공연한 소비를 대중에게 인정 받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젠더 권력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본인이 과대표되어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듯한 마이크로 나선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건 일말의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ㅤ지긋지긋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오랫동안 페미니즘 의제와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내가 목도한 존중이 있다. 본인이 겪지 않은 일에 대한 당사자성을 함부로 점유하려 하지 않는 태도. 신중함. 그것이 나와 다른 타인과 소통할 때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작금의 활동가 분의 대중을 향한 설득에서는 이런 존중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에 여성이라서 비통하다는 게 아니다. 운동의 힘을 믿기 때문에 비통했다.
ㅤ나는 여성 집단 안에 머무를 회색분자로, 여성이지만 완전히 여성은 아닌 논바이너리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다. 여성들 내에서 발생하는 불평등 해결에 관심이 있다. 단순히 여성이라는 거대한 단어로 각 계층의 여성들을 묶기에 힘든 지점이 늘 생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여성이라서’와 같은 말보다 더 구체적인 문장으로 설명하는 것을 선호한다. 따라서 여성의 것을 탈취된 박탈감에 이런 말을 올리는 게 아니다. 타인이 타인을 대할 때 마땅히 갖춰야 할 윤리의 결여가 나를 비통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