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설

한강, 채식주의자

연정 2021. 8. 6. 14:22

ㅤ워낙에도 말이 없는 성격이었던 처제는 종일 베란다에 나가 늦가을 햇볕을 쬐며 낮시간을 보냈다. 화분에서 떨어진 마른 잎사귀들을 잘게 가루내거나, 손바닥을 활짝 펴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아내의 손이 바쁠 때면 지후를 욕실로 데려가 맨발로 차가운 타일을 디딘 채 얼굴을 씻겨주기도 했다.
ㅤ그런 그녀가 한때 자살을 기도했고,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토플리스 차림으로 태연히 앉아 있었다는—그것은 자살기도 뒤에 일종의 착란 증상이었던 것 같다—것을 그는 믿기 어려웠다. 그 자신이 피투성이의 그녀를 업고 병원으로 달렸는데도, 그 경험이 그 그에게 그토록 강한 영향을 미쳤는데도, 마치 다른 여자, 혹은 다른 시간대의 경험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ㅤ단지 그녀에게 특별하달 만한 것이 있다면 여전히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뿐이었다. 처음부터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가족과도 마찰이 있었고 모든 이상한 행동들—토플리스까지—이 뒤 따라온 것이었으므로, 아랫동서는 그녀의 채식이야말로 그녀가 조금도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ㅤ"그저 겉보기에 유순해진 것뿐이라구요. 안 그래도 멍하던 여자가 매일 약을 먹으니 더 멍해진 거지, 달라진 건 없을 거라 이겁니다."
ㅤ그를 당혹스럽게 한 것은, 그의 동서가 마치 망가진 시계나 가전제품을 버리는 것처럼 당연한 태도로 처제를 버리고자 했다는 것이었다.
ㅤ"나를 비열한 놈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최대의 피해자는 나라는 걸 세상사람들이 다 압니다."

p.12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