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연정 2021. 9. 14. 03:44

ㅤ그녀가 프란츠에게 묘지에서 산책한 일을 이야기했을 때, 그는 몸서리를 치며 묘지를 뼈와 돌조각의 하치장에 비교했더랬다. 그날 그들 사이에 몰이해의 심연이 깊게 팼다. 오늘에 와서야 몽파르나스 묘지에서 그녀는 그의 말뜻을 깨달았다. 그녀는 자기에게 참을성이 없었던 것을 후회했다. 함께 더 오래 있었더라면 그들은 조금씩 그들이 사용했던 단어들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어휘는 너무도 수줍은 연인들처럼 천천히 수줍게 가까워지고, 두 사람 각각의 음악도 상대편의 음악 속에 녹아들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이제는 너무 늦었다.
ㅤ그렇다, 이제 너무 늦었고, 사비나는 자신이 파리에 머무르지 않고 더 먼 곳, 더 멀리 떠나리라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죽으면 그녀는 바위 아래에 갇힐 것이며, 멈출 줄 모르는 여자에게 있어 뜀박질 도중에 영원히 멈추는 것은 생각만 해도 참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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