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03
ㅤ나는 본디 사람들이 호들갑 떠는 일에 크게 공감 못했다.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다. 이상한 반골 기질이 나를 휘둘렀다. 자각도 못하는 새에 내 인간 관계를 끊고, 나의 마음을 들쑤시고, 나의 주변 역시 상처 주고. 그래서 딱 한 가지 지키자고 다짐했다. 세 번째만 봉쇄하자. 타인을 상처만 주지 말자. 그거면 된다고.
ㅤ무던한 노력 덕에 나는 사람에게 상처는 덜 주는 대신 인간 관계는 잘 끊고 스스로 잘 상처 받는 인간으로 거듭났다. 아니, 거듭났었다. 과거형을 한 번 더 붙이는 이유는, 내 철칙이 깨졌기 때문이다. 이제 남의 상처도 상관 않는 무뢰한이 되어버렸다.
ㅤ어째서일까. 사실 상처는 어떤 효용도 없다는 것을 내가 제일 잘 안다. 아프다고 해결해줄 수 있는 건 없다. 아픈 건 사랑이 아니다. 아픈 건 날 구할 수 없다. 아픈 자국만 남는다. 그럼에도 상처로 증명해달라는 사람은 어딜 가나 있었고, 나는 그들이 가여워 그들만을 위해 덧났었다. 지워지지 않을 생채기. 만들 당시 어떤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이, 그저 맹목적으로 내가 나를 찔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광기다. 그렇게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오싹하게 한다.
ㅤ아무튼 그런 '효용 없다'는 걸 몸소 체험하고도 상처를 말리지 않게 된 건, 아마 내가 지쳐서가 아닐까. 그가 상처 입지 않으면 내가 입어야 하는데. 칼 휘두르는 자리에 내 팔을 뻗을 힘도 남아있지 않아 방관하게 된다. 분명 더 잘 피하게 당겨줄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이인분의 힘을 내기에는, 내가 너무 늙었다. 내 마음이 늙었다. 노력해도 안 될 것에 매달리기에는, 내 마음의 청춘 다 스러진 모양이다.
ㅤ어쩌면 만용이었을지도 모른다. 상처를 말리겠다는 것. 상처 받을 권리를 내가 앗아간 걸지도 모른다. 그이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훈장 같은 생채기였을지 누가 아는가. 내가 갈취한 것이다. 이제 나는 훈장이라기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마음을 뒤덮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됐으니,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