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세이

이소호, 시키는 대로 제멋대로

연정 2021. 8. 30. 21:53

 ㅤ다른 건 몰라도 현주랑은 연락이 닿았으면 좋겠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나를 최초로 시인으로 불러 준 친구. 생각도 작고 몸도 작았던 너와, 셈이 둔해서 짝수의 소중함을 몰랐던 내가 지금 다시 만난다면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일기장에 적을 수 있을까. 무성한 소문으로 흉흉하기만 했던 그 바닷가 공터가 진짜 유원지가 되어버린 지금, 내가 울던 그 바닷가로 이 글을 떠나보내고 싶다. 부산의 바다는 여기서 너무 머니까, 서점에서 '이소호'라는 이름을 달고 서점 가판대에 누워 있는 것이다. 어쩌다 네 손에 닿든가, 아니면 휩쓸려 영영 닿지 않든가, 어떤 식으로든 이 글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생명력을 가지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둥둥 떠다닐 것이다. 그냥 모든 것을 운에 맡기고자 한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도 다시 만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의 너에게 인사를 건넨다. 이것은 분명히 첫인사이자, 마지막 인사가 될 것이다.

 안녕? 안녕 내 친구, 현주.

 

p.115-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