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연정 2021. 8. 24. 23:38

ㅤ그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그리고 변함없이 소파에 누운 이 여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과거 그의 삶에 등장했던 어떤 여자와도 닮지 않았다. 그녀는 애인도, 부인도 아니었다. 그녀는 송진으로 방수된 바구니에서 꺼내져 그의 침대 머리 맡에 내려놓인 아기였다. 그녀는 잠들어 있었다. 그는 그녀 곁에 무릎을 꿇었다. 열에 들뜬 그녀의 호흡이 가빠졌고 희미한 신음마저 들렸다. 그는 그녀의 뺨에 얼굴을 부비며 잠에 빠진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속삭였다. 잠시 후 그녀의 호흡이 한결 고르게 변하더니, 그녀 얼굴이 그의 뺨을 향해 무심코 다가오는 듯했다. 그녀의 입술에서 신열의 약간 텁텁한 냄새가 느껴졌고 그는 마치 그녀 육체의 은밀함 속에 파묻히고 싶다는 듯 그 냄새를 들이마셨다. 그 순간 그녀가 오래 전부터 그의 몸 속에 있어 왔고 지금 죽어 가고 있다는 상상이 들었다. 불현듯 그녀가 죽고 나면 자신도 살아남지 못하리란 것이 너무도 당연한 진실처럼 느껴졌다. 그는 그녀 곁에 나란히 누워 함께 죽고 싶었다. 그는 이러한 상상에 잠겨 그녀의 얼굴에 뺨을 대고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ㅤ지금 그는 그 순간을 떠올렸다. 그때 체험한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었을까?

p.1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