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독백

젠더 정체성에 대한 고민.

연정 2021. 8. 19. 17:32

ㅤ나는 여성 집단에서 길러진 탓으로 여성들을 다른 성에 비해 친숙하게 여기는 사람이지만, 그리고 내가 '여성이라 여겨지기 때문에' 받는 차별에 당사자성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지만, 여성 집단의 중심에서 뻥 뚫린 구멍처럼 방황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여성 차별을 규탄하고 싶은 마음은 페미니즘 개념을 접한 이후로 항상 있었다. 당장 내가 가정에서 받은 차별도, 내가 여성으로 여겨져서 받은 차별이었다. 사회가 지정한 성별 여성이기 때문에 감내해야 했던 것들. 그러나 규탄을 하면서도 내가 정말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온전히 나를 담을 수 있는가 의문이 때때로 들기도 했다. '시스 여성'이라는 젠더를 '버린다'고 해도 내가 받는 차별이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난 내가 받는 대우가 뭣 같아서 젠더 고민을 한 게 아니다. 애당초 젠더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는 세상이 잘못됐다고 말을 하고 있는데, 단순히 '좋은 대우'를 받고 싶어서 젠더 고민을 시작한다면 그건 모순 아닌가. 내 젠더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내가 차별을 대하는 자세는 연관성이 적었다. 차별받은 경험이 내 정체성의 전부가 아니듯이.
ㅤ내가 젠더 정체성 고민을 하게 된 경위는 이렇다. 어떤 것이든 들으면 본질부터 바로 파악하려고 하는 내가, 좀처럼 쉽게 닿을 수 없었던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여성이란 무엇인가'였다. 도무지 '여성'이라는 말이 내게 안 와닿았다. 내가 나를 제대로 '여자'라고 정의한 적이 있었던가? 어렸을 적, 친척들이 내가 드레스를 입고 그들 앞에서 빙그르르 돌자 나를 향해 '예쁘다'고 했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 의식적으로 치마 입기를 피했었다. 전형적인 '여성상'으로부터 멀어지고 부러 '중성적'이라 여겨지는 이미지를 고수했다. 그렇다고 흔히 말하는 '공주 같은' 아이들을 배척하지도 않았다. 그냥, 나는 저들과 다른 사람인 것이 너무 당연했다. 나는 너무 당연하게 '여성'으로부터 나를 분리하며 살아왔다.
ㅤ그런데 여성 차별을 규탄하면서 다시 나에게 '여성'을 붙이게 됐을 때, 왠지 모를 거북함이 느껴져 힘들었다. 왜 나는 내가 여성임을 인정하지 못 하고 버티고 있는가. 여성이 부끄러운 것도 아닌데. 왜 나는 여성 차별을 규탄하면서 여성 정체성을 긍정할 수 없는가. 도대체 왜. 뭐가 힘들어서. 입밖으로 내뱉기 힘든 고민이었다. 진심으로 차별 없는 세상을 바라고 여성 차별이 사라지길 바라는데, 왜 나는 여성 정체성을 버거워할까.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닐까?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눈을 돌려 여성으로 살아가려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당연히, 도망쳐서 해결될 문제였으면 내가 이런 글도 적고 있지 않을 테다.
ㅤ결정적으로 내가 인정하기로 한 이유 중 하나가 이 고민의 고통이 다수자의 것이 아님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나는 너무도 당연히, 이 고민을 모두가 하는 줄 알았다. 나만 겪는 괴로움이 아닐 줄 알았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야, 고민 자체가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체감했다. 나를 여성이라 명명할 때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구나. 나는 항상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었는데 말이다. 나를 속이고, 남을 속이고 있는 것만 같다는 죄책감. 이런 일련의 과정이 공유되지 않는 것임을 깨달았을 때,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여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평생 해도 내게 이렇다 할 답은 안 나올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마음속 깊이 '여성'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어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다. 그저 그 개념이 친숙하고 익숙하고 날 때부터 의문을 갖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 같이 그 개념이 낯설고 적응 안 되고 의문 투성이로 여기는 사람도 있는 법이라고. 그냥 그런 사람도 있는 거라고. 그렇게 받아들였다. 사회가 정한 기준에 완전히 부합하지 않은 회색 인간인, 나.
ㅤ이런 말을 하면 '여자가 여자지, 뭐가 그렇게 어렵냐'고 할 사람도 있을 테다. 애석하게도 나한테는 어려운 문제다. 당신은 그게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니 인식에 문제가 없겠지만 나는 이 규정이 도통 자연스럽지가 않다. 게다가 그놈의 '신체적 특성'도 이산적인 게 아니라 스펙트럼 분포를 띈다는 연구가 나오는 시대에, 내 고민이 마냥 허투인 것은 아닌 것 같아 심증을 굳히게 됐다. 물론 나는 실제적인 것보다는 내 머릿속의 개념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므로 엄밀히 말하자면 성 스펙트럼 신체 논의가 젠더 스펙트럼의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걸 나도 잘 알지만, 자연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고민이라는 사실이 내게 위안을 줬다. 내가 완전히 과학으로부터 동떨어져서 고심하던 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나는 내 고민이 비자연적이라는 말을 그만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위적으로 축조한, 추상적 이미지에 대한 고민이라 이렇게 더디게 받아들여지는지도 모르겠고. '엄밀히 말하면'을 고집하던 나의 최후인가? 어째서 어릴 때부터 어른들 말씀을 곧이곧대로 안 듣고 혼자 고민하다가 여기까지 온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러는 게 한 두 번도 아닌지라, 그냥 납득하기로 했다. 나는 그냥 나라고. 여성 집단에 친밀감을 느끼고, 여성 차별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사람. 여성 집단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 그 안에서 나갈 생각을 안 하는 사람. 그러나 자세히 보면 내가 밟고 있는 곳은 회색이다. 내 찍은 발자국만큼만 회색일 테다.
ㅤ정체성 발견 이후 나는 평생 타인과 같은 집단으로서의 정체성을 공유할 수 없으리라 확신한다. 나는 철저히 혼자다. 이 발견이 내 삶에 무슨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그저 엄밀해지고 싶었다. 결국 나를 위한 정의다. 오로지 나를 위한. 집단에 소속되는 걸 썩 좋아하지도 않는 편이라 혼자라는 사실로 고독은 느낄지언정 슬픔은 안 느낀다. 그보다 내 회색 발자국을 지워내려 노력을 그만두고 싶다. 노력하면 소속될 것이라는 환상이 나를 힘들게 했다. 노력해도 안 된다. 노력으로 극복할 게재도 아니다. 남이 나를 인정하든 안 하든 나는 나로 살아갈 테다. 내가 맞출 수 있는 한계는 고작 내 자리를 유지하는 것뿐이다. 나를 나로서 지키기 위해, 나를 유지하기 위해 나는 선언한다. 나는 젠더퀴어다. 논바이너리 에이젠더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