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설

이도우,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연정 2021. 8. 19. 07:08

ㅤ애리를 마주한 채 선우는 머뭇거리며 조용히 말했다.
ㅤ"너 없이 어떻게 사냐. 너 데리러 오려고··· 병원에서 빨리 나왔다."
ㅤ"난, 너 만난 게 십 년이 아니라 백 년은 된 거 같아. 뼈에서 사리가 나올 거 같다고! 그거 아니?"
ㅤ"···이제 백 년으로? 앞으로 천 년은··· 더 붙어 있을 건데. 다음 생에도. 그 다음 생에도 너 만날 건데."
ㅤ"싫어. 누구 마음대로."
ㅤ선우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곤혹스럽고 막막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시선을 떨어뜨린 채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그러고는 목발 하나를 땅에 내려놔버렸다.
ㅤ"잘못했다. 내가 무릎 꿇고 빌까···?"
ㅤ순간 애리는 화가 난 듯 선우를 따라 그의 발치에 앉더니 땅에 떨어진 목발을 손으로 집었다.
ㅤ"바보 같은 짓 하지 마. 이래가지고 어떻게 무릎을 꿇는다는 거야, 순 거짓말."
ㅤ"난 거짓말 안 해. 그래서 네가 더 힘들었잖아 뭘. 앞으로는 좀 연습해야지···."
ㅤ하지만 선우는 무릎을 꿇을 수 없어 깁스한 발을 불편하게 편 채 그냥 땅에 주저앉아버렸다. 애리는 정말 화가 나 견딜 수 없는 표정으로, 피가 배일 만큼 입술을 깨물고 지켜보고 있었다. 선우가 담담하게 말했다.
ㅤ"우리 이번 생에서도 같이 살자, 죽을 때까지. 그리고 다음번에도."
ㅤ"그거 거짓말 해보는거야?"
ㅤ"아니, 이번에도 참말···."
ㅤ애리는 목발을 잡은 채 쭈그리고 앉아서 울어버렸다. 선우는 어찌할 바를 몰라 그런 연인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애리는 한 번 뿌리치려고는 했지만 고개를 들지 못하고 울었다. 막막한 겨울 들판 너머 풍경도 고요하던 어느 하루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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