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설
이도우,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연정
2021. 8. 19. 05:59
ㅤ"애리 언니가··· 내 우상이었어요, 십 대 때에는."
ㅤ진솔에게서 등을 돌린 채 벽을 향해 희연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ㅤ"예쁘고··· 공부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백일장 나가면 일등상 받고. 얼마나 다재다능하던지··· 뭐가 돼도 될 줄 알았다? 근데··· 한 남자 옆에서 저렇게 행복해하고··· 찻집에서 차 끓이고. 결혼하자고 얘기할 때까지 기다려주고···. 나, 언니 그런 모습 싫어요."
ㅤ짙은 한숨을 내쉬더니 희연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ㅤ"나 이제 그만둘 거예요. 건 오빠 좋아하지만 나 자신이 훨씬 소중해. 난요··· 성공할 거야. 잘할 거야. 그 남자랑··· 퓰리처 상 중에 하나를 택하라면, 상을 받을래."
ㅤ목이 메었는지 희연의 음성이 젖어 있었다. 진솔이 담담하게 말했다.
ㅤ"우는 거야?"
ㅤ대답 없이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고, 한참 뒤에야 희연은 겨우 목소리를 고른 듯 자존심을 세우며 말했다.
ㅤ"딱 오늘만 우는 거예요. 다시는 내 평생에··· 남자 때문에 내 귀한 눈물 안 흘려, 나."
ㅤ잠도 오지 않는 밤, 베개를 고쳐 베는 진솔의 마음속에도 쓸쓸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p.413-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