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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채식주의자

연정 2021. 8. 9. 02:13

ㅤ마지막으로 보았던 그의 눈을 그녀는 또렷이 기억했다. 공포에 질린 그 얼굴은 낯선 것이었다. 그녀가 그토록 존경하려 애썼던 사람, 인내하고 보살피기 위해 몸을 으스러뜨렸던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녀가 안다고 생각했던 그는 한갓 그림자에 불과했다.
ㅤ나는 당신을 몰라.
ㅤ수화기를 내려놓은 손에 힘을 주며 그녀는 중얼거렸다.
ㅤ용서하고 용서받을 필요조차 없어. 난 당신을 모르니까.
ㅤ전화벨이 다시 울리기 시작하자 그녀는 전화기의 코드를 뽑았다. 다음날 아침 코드를 다시 연결했지만, 그녀가 짐작했던 대로 그는 다시 전화해오지 않았다.

p.279-280